어느새 8월의 중반이 되었고, 꿈만 같던 방학도 거의 끝나간다. 나는 마지막 여유를 짜내어 이 글을 써 본다.
난 단편집과 장편소설 둘 다 좋다. 어떨 땐 단편집이 좋고, 어떨 땐 장편 소설이 좋다. 그런데 왠만한 장편소설도 『4페이지 미스터리』처럼 나를 끌리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4페이지짜리 미스터리 소설을 모아놓은 단편집이기 때문이다. 그런 4페이지 소설들을 60편이나 모아놓았다. 과연 저자는 어떤 방식으로 미스터리를 압축했을지 궁금해 진다. 이전에도 이런 부류의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요즘엔 이런 책이 안 나와서 좀 아쉬웠다. 그런데 4페이지 소설이 등장하니 반갑다.
오랜만에 요시토모 바나나의 새로운 소설을 본다(역시 바나나는 민음사인가). 『그녀를 위하여』가 네이버에 연재되었을 때부터 그녀를 유심히 보았다. 전작 표지가 단순한 색깔의 산뜻한 분위기라면 이번 작품의 표지 분위기는 다채롭고 화려하다. 이 작품에서 그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역시나 치유다. 제목에 나오는 '시모키타자와'는 '젊은이의 거리'라고 불린다. 작가는 실제로 이 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사람'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우리들의 7일 전쟁』은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사회 비판을 동시에 가진 소설은 대체로 힘이 있다.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 20년 동안 29권의 '우리들' 시리즈를 만들게 한 전설적인 책이다. 어른들의 권위에 저항하여 7일간의 투쟁을 한 십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청소년 소설치고는 굉장히 저항적으로 나간다. 이 소설은 아이들의 승리보다는 어른들의 깨달음을 결말의 중점으로 둔다. 27년 동안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기억하는가, 이윤기 작가를? 우리는 보통 지나간 일, 그리고 죽은 사람이 어떤 것이든 금세 잊는다. 숭례문 방화, 천안함 사건, 태안 기름 유출, 연평도 사건....... 박완서, 이윤기 등의 죽음(나로서는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도 더한다)...... 결국 다 잊혀 간다. 그러나 그들이 남겨 놓은 것들을 통해 우린 다시 그들을 기억할 수 있다. 『봄날은 간다』는 이윤기를 위한 책이다. 그러나 결코 이윤기만이 주인공이 아니다. 이 책은 그를 기억하려는 후배 소설가들이 합작한 의미있는 책이니까.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이윤기 작가의 대표작 두 편을, 2부는 이윤기 작가의 후배들의 소설 다섯 편을, 3부는 이윤기 작가의 후배들의 에세이 다섯 편을 담고 있다. 이윤기 작가의 아름다운 에세이를 비롯하니, 이 책은 차라리 소설보다는 에세이집에 가깝다.
『신의 궤도』는 배명훈의 첫 장편소설이다. 신과 관련된 SF 소설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작품에 스스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짬뽕이라기보다는 종합 선물 세트이다. 서로 엄격히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한 규격 안에 들어가 질서를 이루는. 이 작품은 온갖 상상력과 장르의 종합 선물 세트이다. 처음 그를 읽는 독자도 매혹시킬 수 있을까, 그는?
꽃의 나라는 아름다울까? 문득 궁금해진다. 적어도 그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에 위로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한창훈 작가가 8년 만에 내보이는 장편소설 『꽃의 나라』는 많은 폭력을 보여준다.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가릴 것 없이, 그들은 그들만의 상처에 괴로워한다. 난 끊기가 없어서 그의 연재글도 안 읽었을 테지만, 책소개를 보면 광주항쟁에 관련된 내용이라고 한다. 그것도 저자가 직접 겪었던. 그래서 난 이 책을 일종의 자전적인 소설로 보고 싶다. 고등학생인 '나'와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
생텍쥐페리의 편지집을 읽은 이후로 작가들의 편지집을 읽는 것이 기대가 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의 편지는 생소하다. 작가에게도 친구가 있다. 친구는 그에게 도움을 주고 어려움을 함께 나눈다. 작품세계와는 달리 편지는 밝고 부드럽다고 한다. 또, 문학과 독서에 대한 토론도 나누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중 100편의 편지만 모아서 연대순으로 엮은 것이다. "마지막 부탁이네, 내가 쓴 모든 것을 읽지 말고 불태워주게!"라고 말한 프란츠 카프카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이 편지집을 출간했다. 친구의 이 행동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우리에겐 좋지만, 카프카에겐?
이번 책들은 '이면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 제국은 겉으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속에서는 쾌락과 타락의 역사가 판치고 있었다. 이 사실은 익히 알려져 왔다. 그렇지만 우린 그 구체적인 역사를 알지 못했다. 『반역』을 읽으면 로마인들이 검투사의 경기에 열광하는 것을 보았다. 로마 제국 쾌락의 역사엔 '잔인성'과 야만성이 담겨 있었다. 또, 쾌락의 역사에서 성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로마 제국에는 음란을 일삼았다. 무엇보다 이 쾌락의 역사에 선봉장이 되었던 자는 로마의 황제로, 『색 광 폭』의 황제들을 연상시킨다. 결국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게 한 것은 이런 타락함과 무질서한 쾌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질서한 쾌락은 곧 집단적인 정신의 죽음이니까.
한편,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은 더욱더 충격적인 사실을 제공한다. 성인으로 칭송되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불편한 진실이다. 우린 그 동안 그를 완전한 비폭력 운동가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간디는 수많은 인도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아 죽음에 내몰았으며 대중 폭동을 조장하고 방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간디의 이면이 조금 충격적이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리 충격적인 일은 아니다. 간디도 인간이기에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고, 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간디는 여전히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체코 3부작의 세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작품이 '작가가 사랑한 도시'였고, 두 번째 작품이 체코 단편소설 걸작선이라면, 세 번째 작품은 바로 SF 걸작 모음선이다. 체코 SF 소설은 수천 편이지만 그 중 야로슬로프올샤와 박상준이 엄선한 것만을 담아 놓았다. 체코 SF를 알지 못하는 국내 독자들을 위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다. 전반적으로 난 이 시리즈가 나온 것만으로도 신선했다. 우리에게 매우 생소했던 동유럽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원제 'Rabbit, Run'. 존 업다이크의 소설이다. 사실 래빗은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이다. 존 업다이크는 이 소설 외에도 '토끼' 이름을 넣은 소설을 썼다. '20세기 미국문학의 아버지'라는 칭호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소설도 한 동안 번역되지 않았다. 이번 소설을 계기로 다시 그의 소설이 현대적으로 재 번역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달려라, 토끼』의 첫 문장을 소개하겠다.
"아이들이 백보드를 달아놓은 전봇대 주위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달리고, 환호성을 오른다. 운동화가 골목길에 완만하게 깔린 자갈을 밟거나 비빌 때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이 솟아올라 전깃줄 위 푸른 3월의 축축한 대기 속으로 사라져간다. 신사복 차림의 토끼 앵스트럼이 골목길에 다가와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키가 6피트 3인치나 되는 26세의 사나이다. 키도 매우 클뿐더러 토끼를 닮은 데라곤 별로 없지만, 넓적하고 하얀 얼굴, 해맑은 푸른 눈동자, 작은 코 밑의 입술을 떨면서 피우던 담배를 무는 모습을 보면 그런 별명이 붙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별명은 어렸을 때 붙여진 것이다. 그는 그곳에 멈춰 서서 생각한다. 바야흐로 새 세대인 아이들이 나를 밀어내는군."
P.S: 『천년을 훔치다』라는 소설도 꽤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그다지.....
P.S: 내 생각엔 일본 소설이나 국내 소설 중 하나로 신간 평가단 도서 받을 것 같다(마지막 달에).
앞으로 남은 4권의 도서가 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