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리고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책이 인쇄되고, 또는 또 다른 책이 쓰여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달에 두 번씩 새로 나온 책을 파악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들여지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것을 하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자, 이제 시작해 보자. 오늘은 조금 더 체계적으로 알아보고 싶다.
1. 문학전집
문학전집은 정기적으로 출간되어 무엇이 출간될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식상한 작품이라면 몰라도 새롭게 출간되거나 해석되는 작품은 정말 좋다. 예컨대, 문학동네 문학전집 76번, 알베르 카뮈의 『이인』 같은 것.
『이인』은 생소할지 몰라도 알베르 카뮈의 최초 소설인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러나 문학동네 문학전집은 기존의 제목에서 벗어나 독자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이기언 교수는 주인공 뫼르소의 두 가지 면을 동시에 담기 위해 '이인'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고 한다. 역자에 따르면, 제목은 타인과 다른 모습의 뫼르소, 자신 속에 두 가지 모습을 가진 '지킬 박사와 하이드적'인 뫼르소의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다. 문학전집은 똑같은 작품을 재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세르반테스는 매우 불행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그 무엇을 담고 있는 대표작 『돈키호테』마저 아동용으로 왜곡될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소설은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알고 보면 세르반테스라는 작가는 『돈키호테』외에도 『모범 소설집』을 비롯한 소설들과 희곡들을 낸 사람이다. 시공사에 의해 또 다시 그의 문학이 소개되기 시작한다. 세르반테스 문학이 다시 한 번 국내에 알려지길 기원해 본다.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프랑스의 천재 작가라고 불리는 조르주 페렉의 두 소설이 출간되었다. 이 두 소설은 이미 국내에 출간된 적이 있었으나 금세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이 책 덕분에 다시 페렉이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불어 프랑스 문학도. 열린책들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와 펭귄클래식의 프랑스 소설 출판 추세가 엄청나게 도움을 주고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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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천 년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도 없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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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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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것도 역사다. 나의 역사이거나, 당신의 역사다. 나로서는 쓰고 있는 역사이고, 당신으로서는 읽고 있는 역사다. 어떻든, 당신이 이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 위대한 역사이다.
나는 이런 역사서를 '테마'가 있는 역사서라고 부르고 싶다. 반드시 역사가 연대기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법이 있으랴? 한 분야(테마)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는 역사도 분명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테마가 있는 역사서가 호기심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채워주는 법이다.
반면, 이러한 역사서는 역사의 어느 일부분, 또는 사건을 따 와서 그 부분을 다룬 것으로 위의 '테마'가 있는 역사서와는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십자군 이야기』는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의 신작이다. 누구든 볼 사람은 보라.
이 책은 20세기 유럽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역사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심층적이지만 단순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저자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20세기의 역사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때문에 더욱 생생하고 입체적이다. 그야말로 산책하듯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시오노 나나미만 기억하면 안 된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알아라. 이들의 차이점은 직접 읽어보면 알겠으나, 어쨌든 역사란 다양하게 해석되기 마련이다. 역사가는 단순히 역사만 알아서는 안 되고, 그것을 자신의 말로 바꾸어야 한다.
3. 문학(소설)
아무래도 나는 문학에 관심이 많다 보니, 신작 중에서도 문학이 마음에 끌린다. 특히나 6월에는 상당히 많은 문학 작품이 등장하였다.
현대에는 굉장히 책이 많이 나온다. '현대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도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고전으로 평가받으려면 시간이 흘러야 한다. 알베르 카뮈,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작가들이 그렇다. 그들이 죽은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작품은 꾸준히 출판되고 또한 읽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앞으로도 살아남을지는 의문이 든다. 세월이 지나도 읽히기 위해서는 호메로스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글을 매우 잘 써야 하니까. 어쨌든 여기서 나는 또 다른 '평가받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 바로 『예루살렘』이다. 작년에 돌아가신 주제 사라마구(대표작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 책에 대해 '서양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위대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작가 공살루 타바리스는 르 피가로에게 '포르투갈의 카프카'라는 평을 받았다. 이 소설은 암울하지만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눈먼 자들의 도시』와 같이 정신병원이라는 알레고리적 공간이 등장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2004년에 쓰여진 책이다. 이 작가가 7년만에 국내에 알려진 것은 아쉽지만, 지금부터 평가받는 것의 시작이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원작으로, 오래 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소설의 뛰어남이 인정받고 있다. 로버트 러들럼은 이 책에서 '과거 없는 사나이' 본이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액션과 잘 짜여진 플롯이 이 책을 명작으로 만들었다. 어떤 내용일지 무척 기대된다.
드디어 박범신 작가가 돌아왔다. 『비즈니스』가 출간된 이후로 처음이다. 오랜만인 것 같다. 500쪽 가까운, 양장본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에 대해 다룬 전작과는 달리,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실 이 소설은 중앙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연재된 바 있어서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니 느낌이 새로울 것이다. 『지우전』은 '칼'에 대한 이야기이다. 박애진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이 소설은 이름도, 마음도 지워져 말 그대로 '칼'이 된 '지우', 나아가 도사들의 여정이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좀비들』의 작가 김중혁의 새로운 장편소설이 나왔다. 이 소설은 전작 장편소설인 『좀비들』과는 달리 상당히 유머있으면서 인생의 숨은 진리를 담고 있다. 마치 주사위 놀이와 같이 독자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진담'을 설파하고 있다. 기대해도 좋다.
이사카 고타로의 새로운 대작 장편소설이다. 저자가 '작가로서 가장 큰 성취감을 준 작품'이라고 표현한 『그래스호퍼』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60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가 특유의 흥미진진한 서술을 보여주고 있다. 신칸센 열차 속의 사람들이 벌이는 치열한 질주극이 『마리아비틀』의 핵심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것을 담아놓은 책이다.
단편집 중에서 서로 이어지는 시리즈는 드물다. 그러나 나로서는 최초로 단편집 시리즈를 볼 수 있었다. 『회귀천 정사』가 『저녁싸리 정사』로 마무리된다. '화장 시리즈'의 미스테리가 드디어 끝나는 것이다. 꽃이라는 아름다움 뒤에 숨은 어둠이 주제를 부각시킨다.
'백조의 노래'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제목 『스완 송(1987)』은 1500페이지 가량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소설이다. 스완은 백조라는 뜻도 있지만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에 '스완 송'이라고 번역한 것 같다. 이 작품은 '세기말 소설'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데, 세기말 소설이란 질병이나 전쟁과 같은 재앙으로 문명이 황폐화되거나 암울한 분위기가 짙게 깔려진 상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나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이후로는 그러한 전설이 깨졌다. 스완의 아름답고도 위대한 여정이 전쟁 속에서 밝게 빛난다.
『생명의 한형태』는 다작으로 유명한 아멜리 노통브의 새로운 소설이다. 여담이지만, 그녀는 미출간 원고만 해도 출간 원고의 절반 가량 되니, 죽을 때까지 1년에 한 번씩 출간해도 될 것 같다. 노르웨이 작가의 소설인 『헤드 헌터』는 범죄 소설이다. 주인공의 이중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황선미 작가의 『사라진 조각』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애니메이션 개봉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그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이다. 소재는 청소년 집단 성폭력과 출생의 비밀에 관한 것이다. 비록 상투적인 것이지만, 황선미 작가의 손길이 닿아 내용이 궁금하다.
그리고........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르 클레지오의 또 다른 작품, 『홍수』. 이 작품은 그의 초기작이지만 거의 45년만에 다시 출간된 소설이다.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인 『조서』의 뒤를 잇는 『홍수』는 자신의 정체를 찾아나가는 프랑수아 베송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71살의 클레지오가 13살 쯤에 구상한 내용이기 때문에 『허기의 간주곡』과 같은 최근 작품에서 느낄 수 없었던 젊음과 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를 꿈꾸는 한 소년의 언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70여 페이지에 이르는 프롤로그는 그야말로 이 소설의 정수이니, 반드시 읽어보시길.
※ 원래는 통합하려 했으나 방대한 양으로 인해 1, 2부로 나누겠습니다. 2부는 문학(시/에세이), 인문, 기타 등을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