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970년대, 군부 독재 시절. 그 시절, 군부는 빨갱이를 찾는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학대하고 태백산맥에 뿌려진 '삐라'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그 시절 작가들은 그런 현실을 보며 묵묵히 지켜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들 중에 유일하게, 그 잘못을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쳐다본 소설가 한 명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정래. 조정래 작가는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썼다. 그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국가는 파동이 일어났고, 조정래 작가의 그 소설은 금서가 되었다. 하지만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군부 독재의 진실을 직면하게 되었고, 그것을 바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태백산맥』은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바꾼 소설이었다. 붓 하나에서 나오는 힘은 참 대단하다는 말이 진실인 것 같다. 

 

 조정래 작가는 군부 독재 시절을 무너뜨리고, 국민들의 영웅 소설가가 된 채로 계속 살아왔다. 그리고 계속 그는 우리나라와 함께 살아오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문제점을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그래서 『아리랑』, 『한강』 등의 또 다른 대하소설이 등장한 것이다. 그가 주로 비판한 것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였다. 

 

 그런데 21세기로 접어들자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21세기에는 경제가 놀랍도록 비약되어(비록 IMF는 있었지만)대한민국은 수출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정치도 민주화가 되어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이 움직였다. 참으로 평범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조정래 작가는 이 사이에 벌어진 어마어마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비리를 저지르는 기업들이 국민들의 경제를 이끌었다는 이유로 계속 그 비리가 감추어지고 있다는 진실 말이다. 조정래 작가는 의문을 품었다. '왜 정치에서는 비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경제에서는 그렇지 않는가? 정치와 경제는 분명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대체 왜?' 이런 의문 끝에 조정래 작가는 깨달았다. 기업들의 비리를 감춰준 것은 바로 '국민'이었다는 것을. 이윽고 그는 그의 최대 무기인 '붓'을 꺼내들고, 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소설이 바로 이 『허수아비 춤』이다. 이 소설의 제목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허수아비 춤'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지난 50여년 동안 사람들이 기업을 마치 종교처럼 맹신하고 경제 범죄를 방관하거나 관대하게 봐주었다는 의미이다. 즉, 우리는 그 동안 '허수아비 춤'을 춘 것이다. 둘째는, 그와 반대로 국민들이 힘을 합쳐서 그들이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하고, 허수아비 춤을 추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 국민들의 과제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제목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소설의 내용은 이 제목의 의미와 일치한다. 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만들 수 있는데, 하나는 국민들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기업들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기업들을 '허수아비'로 만들려는 '경제민주화실천연대'의 사람들의 노력이 드러나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대부분 '강기준'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전인욱'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여, 대기업들의 비리를 고쳐보자는 다짐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끝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아, 여운이 길다. 

 『허수아비 춤』은 6장까지는 주인공이 강기준인 것처럼 묘사한다. 그의 이중적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설의 제 1장 첫부분을 보라. 강기준은 자신의 선배인 경제학 교수 박재우에게 아부를 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조폭은 배신자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지만 회사는 무능자에게 인사권이란 칼을 휘둘렀다. 그러고 보면 회사는 조폭보다 더 매정한 조직일 수도 있었다(p.17)."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면은 태봉 그룹에서 스카우트해서 온 박재우와, 일광그룹의 사원인 강기준, 그리고 회장의 특급 충견이라고 불리는 윤성훈 실장이 '문화개척센터'를 만드는 장면이다. 소설이 전개되면서 점점 복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남 회장이 몇 백억의 비자금을 암호로 숨기고, 초고층 대형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을 계획을 세우는 부분이 그렇다. 

 "몇십 층을 헤아리는 최고층의 대형 주상복합아파트를 수천 세대 지으면서 그 내부 자재들을 전부 외제로 하고, 그걸 구매할 때 구매가의 20%를 비자금으로 붙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외국에서 발생하는 거래이기 때문에 세무서의 눈길을 깨끗이 피하게 되고, 그 막대한 비자금은 회장 개인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p.89)." 

 『허수아비 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식이 하나 있다. "정치=경제"라는 공식이다. 일광그룹과 태봉그룹의 경쟁은, 구 소련과 미국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이 소설의 4장을 보면, 강기준과 박재우가 각각 정인용, 김동석 그리고 신태하를 스카우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그 셋을 스카우트해 감으로써 '은밀한 그물짜기'를 완성시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과시하며, 여러 말을 하는데, 이 대화 중에는 이 소설의 공식이 다시 증명되는 부분이 있었다.  

 

 "예, 언제나 그게 골치지요. 허지만 5만 원권이 생겨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고맙게도 부피가 5분의 1로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전에는 만 원권으로 1억이면 골프 가방에 하나 가득 되었는데, 그걸 가지고 어느 국회의원한테 갔는데 글쎄 안 받는 겁니다. 그걸 그냥 가지고 돌아오는데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속상하고 그러던지요." 박재우가 크크크 웃었다."아니, 그런 국회위원도 다 있소? 넙죽넙죽 제일 잘 넘기는 게 그 사람들인데." 윤성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p.152~153) 

   

 『허수아비 춤』 8장에서 윤성훈, 박재우, 강기준, 일명 '골든 패밀리'가 외국으로 나가 쇼핑을 하는 장면도,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흔히 일삼는 외국 여행을 연상시킨다.

 『허수아비 춤』은 6장까지 기업들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에 애쓴다. 이 소설의 6장은 '무한 감동 로비'를 이루기 위해 금고를 만들고 차명계좌를 만들다가 들켜버리는 일광그룹의 모습이 등장한다. 윤성훈이 은행장에게 그를 해고한다면서 위협하는 장면은 참으로 씁쓸했다. 기업들이 이렇게 '돈'으로 자신들의 비리를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강한 것은 '돈'이다. 그 다음이 '회장'인데, 회장은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권력이 많아진다. 돈(경제)와 권력(정치)는 비례 관계인 것이다. 그리고 '돈'의 힘에 관한 부분은 제 2장에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 하물며 네까짓 사람쯤이야(p.69)!" 

 

 돈은 이 책에서 절대권력이자 괴물이다. 돈은 죽은 사람도 부리는데, 하물며 '네까짓 사람쯤'은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돈 앞에서 인간의 가치가 상실되는 부분이다. 돈이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광그룹 기업의 세 인물의 생각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을 이끌 자격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을 이끈다면 과연 대한민국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까? 작가의 말처럼, 강기준, 박재우, 윤성훈, 남 회장 같은 사람들이 나라를 지배한다면 그것은 파멸의 길일 뿐이다.

  

 한편, 이 소설은 7장부터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한다. 바로 검사 '전인욱'이다. 그는 일광그룹 같은 부패한 대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전인욱은 기업의 비리를 폭로하는 일을 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많은 돈을 치름으로써 그들을 마비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전인욱은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그를 제주도로 귀양보내려는 음모를 그는 가족과 함께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극복한다. 전인욱이 너무나 위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태봉그룹의 비자금 사건도 아주 큰 사건으로 여기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가, 일광그룹의 비리를 모른 척 할리 없으니까 말이다. 전인욱은 과감하게 검사 직업을 포기한다. 그에게 놓인 '서로 다른 길' 중 그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는 검사 직업을 포기한 눈으로 태봉그룹의 운명을 지켜본다. 예상대로, 태봉그룹은 무죄로 끝난다. 정말 그들은 국민보다 10000배나 더 재산이 많아서 국민들을 노예로 부릴 수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품어본다. 

 

 이 소설의 9장은 이 작품의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 소설의 첫 부분은 마치 조정래 작가가 독자들, 아니 국민들에게 직접 말하는 것 같이 신랄하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아니다. 노예다. 국가 권력의 노예고, 재벌들의 노예다. 당신들은 이중 노예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이 당신들의 비극이고, 절망이다.  

 이번에 재벌의 재산권 불법 상속과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이 또다시 벌어졌다. 일광그룹이 일으킨 이번 사건은 몇 년 전 태봉그룹에서 일으킨 사건과 한 치도 다름없이 똑같다. 왜 그런 사태가 거듭 벌어지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세상 망칠 그 거대한 경제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봉그룹이 무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라의 주인이고 이 사회의 주인인 국민과 대중들이 그 끔찍한 사건을 방관하고 묵인했기 때문이다. 

 (…) 

 국민인 당신들이 노예이고 싶지 않다면 이 점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 당신들 모르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아야 한다. 그 엄청난 경제 범죄를 무죄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비자금의 막강한 힘이었다.  

  (…) 

 태봉그룹의 시범을 보고 그대로 따라한 것이 일광그룹이다. 자기네도 무죄가 될 것이 틀림없으니까. 재벌들이 저지르는 그 불법 행위는 분명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범죄이고,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게 씌워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재벌들의 경제 범죄에 대해 너무나 관대했다. 왜 그랬을까. 기업들이 잘되어야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순진함을 넘어 바보 같은 기대고 희망이었다. 그건 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가 취해 있었던 환상이고 몽상이고 망상이었다. 태봉그룹과 일광그룹의 불법 행위가 그것을 잘 입증해 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동안 일방적으로 품어 왔던 그 기대와 희망은 바로 자발적 복종이었다.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청한 것이다. 

 긴 인류의 역사는 증명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을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 노예들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 우리들 자신이었다.  

 우리는 지난 80년대에 피 흘려 '정치민주화'를 이룩했다. 이제 우리는 '경제민주화'를 이륙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 경제민주화가 바로 모든 재벌들이 그 어떤 불법 행위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취해 있었던 그 환상과 몽상과 망상에서 빨리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강력한 무기를 뽑아들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소비자로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권한인 '불매'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경제 범죄를 저지른 기업의 상품을 사지 않는 '불매 운동'을 적극 벌이는 것이다. 그 막강한 소비자의 힘에 대항할 기업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그 굴복으로 마침내 기업들은 투명경영을 하게 되고, 세금도 올바로 내게 된다. 그 때에 비로소 '기업들이 잘되어야 우리도 잘 살수 있다'는 말이 성립하게 된다. 

 투표가 피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를 계속 신장시켜 나갈 수 있는 '정치혁명'이듯이, 우리가 단결한 불매운동은 기업들과 우리들이 모두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경제혁명'이다. 우리가 그 어리석은 환상과 몽상과 망상에 사로잡혀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기업들은 더욱 신바람 나게 경제 범죄를 저지르고, 우리는 점점 더 비참한 노예가 되어 간다.  

 감기 고뿔도 남 안 준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왜 재벌들이 당신들에게 돈을 주겠는가.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 내고, 거미줄도 수만 겹이면 호랑이를 묶는다. 조상들의 일깨움이다. 

 국민, 당신들은 지금 노예다(p.322~327)."  

 

 조정래 작가는 이렇게 국민들에게 신랄한 한 마디를 던지면서도 이야기를 전개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부분에서 생략된 부분은 바로 일광그룹이 재산권을 불법 상속하고 경영권을 불법 승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 서술된 부분이었다. 전인욱이 가입한(전인욱은 경제민주화실천연대에서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 '경제민주화실천연대' 역시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1인 시위를 하지만, 결국 그것은 파묻히고 만다. 윤성훈 역시 이 사건이 태봉그룹의 비자금 사건과 마찬가지로, 순조롭게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기업들이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인 허민 교수는 결국 대기업의 횡포에 당하고 만다. 그는 재임용에서 탈락되어, 대학에서 나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 되었다. 좌절한 그는 이윽고 경제민주화실천연대의 고문변호사인 전인욱을 찾아간다. 전인욱과 허민 교수는 서로 뜻이 맞는다. 전인욱은 허민의 탈락 이유(내용 부실)는 핑계이며, 그것이 기업들의 음모라고 여긴다. 그러면서 전인욱은 허민 교수에게 번역 사업을 권고받아 생계를 유지하도록 한다(사실 전인욱의 아내도 번역하는 것에 시간을 쓰고 있지만). 

 전인욱과 허민 교수는 갈수록 경제민주화실천연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 마침내 전인욱은 경제민주화실천연대의 공동대표를, 허민 교수는 (나중에)이사장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둘이야말로 이 소설의 다른 부분의 거대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이 가져다주는 비리의 해결책의 중심에는 그들이 서 있다. 

 

 『허수아비 춤』의 마지막 장인 11장은 허민 교수가 올린 칼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칼럼'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정래 작가의 말이다. 즉, 그는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 이 두 번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저자가 이 작품에서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세상을 향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만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네를 전혀 신뢰하지도 존경하지도 않고 너무 불신하고 욕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는 말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기업인들을 전혀 나쁘게 보지 않고 존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인가? 틀림없이 사실이다. 그럼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 원인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첫째 선진국의 기업들은 완전히 투명경영을 한다. 그러므로 전혀 탈세를 하지 않는다. 둘째 뒤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범법을 저지르지 않는다. 셋째 기업인들은 그렇게 합법적이고 양심적으로 자기 개인들의 돈(절대 회사 돈이 아님)에서 천문학적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 

 그런데 우리 기업인들은 어떠한가. 선진국 기업인들과 정반대로 한다. 그들은 투명경영을 하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탈세를 일삼으며, 몇천억에서 몇조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하는 범행을 예사로 저지르고, 개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는 커녕 불법 상속을 밥 먹듯이 한다. 이러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자기네를 존경하지 않고 불신한다고 불만을 갖다니……. 바람이 불어야 나무가 흔들리고, 북은 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괜히 생겨났겠는가. 우리 기업인들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존경하다 못해 그들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것이다. 

 기업인들은 추한 자화상을 자기네 스스로 만들어 놓고는 존경해 주지 않는다고 사회인들을 타박한다. 그들은 탈세, 비자금 조성, 불법 증여와 상속뿐만이 아니라 선거 때마다 터지는 불법 정치 자금 사건, 권력 기관 매수 사건, 막대한 돈 해외 도피, 끝없이 뿌리는 불륜의 스캔들……. 이런 것들이 그들 스스로 만든 자화상 아닌가. 

 그 결과 국민들의 기업 호감도는 100점 만점에 38점이며, 기업인들의 재산에 대해 '부정적인 방법으로 축적했을 것'이라는 응답이 77%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축적했을 것'이라는 답변은 19%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5~6년 전의 조사이고, 요즈음에 하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에 대기업 서너 개가 엄청난 비자금 사건과 불법 상속 사건을 일으켜 세상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고루 나누어 먹고도 남는다. 그러나 부자들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그 끝도 한도 없는 부자들의 탐욕을 방치하면 결국 이 사회는 망할 것이다. 그들의 탐욕을 막아야 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일반 대중인 우리들이다. 그런 경제 범죄를 저지른 기업들의 상품을 사지 않는 '불매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야 하고, 그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여러분들은 시민단체로 모여 들어야 한다. 모든 시민단체들은 지금 활짝 문을 열어 놓고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다(p.393~396)." 

  

 허민 교수가 경제민주화실천연대의 인터넷에 올린 '기업인들의 자화상'이라는 이름의 이 글은, 조정래 작가의 '작가의 말'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그래서 나는 허민 교수가 이 소설에서, 조정래 작가의 초상이라고 생각한다. 

 

 일광 그룹은 일심 재판에서 무죄(무죄에 가까운) 선고를 받는다. 이 소식에 기뻐한 박재우, 윤성훈, 강기준은 술자리를 들기로 한다. 전인욱은 비록 분노하고, 속이 답답하겠지만, 그는 분명히 희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직 두 번의 재판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후에 승리하는 자가 이기는 것이 법의 방식 아닌가. 

 하여튼 그 셋은 술자리에서 '자발적 복종'에 대해 실컷 떠들어댄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박재우가 던진 말은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 준다.  

 

 "아까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힘에 의해 80년대의 군부 독재가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예,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들 또한 그 경험을 확실하게 믿기 때문에 '경제민주화' 운운해 가며 다시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정치'라는 것과 '경제'라는 것의 차이를 모르고 설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군부독재 30년이 국민들에게 준 것은 무엇입니까. 억압과 공포 두 가지 뿐입니다. 자기네 통치에 반대하는 말은 한 마디도 못하게 억압하고, 신문에 난 사실을 술주정으로 떠들어도 수사 기관에 잡아다가 두들겨 패는 공포를 느끼게 했습니다. 국민들은 들고 일어나지는 못하고 불만이 가득 차 있는데, 80년대에 마침내 그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거리로 뛰쳐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그게 억압정치, 폭력정치, 공포정치에 분노하고 저항하기 시작한 군중 심리라는 거지요. 한번 불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며 끝장을 보고 마는 그 무서운 군중의 힘에 의해서 인류사의 모든 독재 권력들은 종말을 고했습니다. 그런 정치에 비해 경제는 전혀 다릅니다. 경제가 국민들에게 주는 것은 정치와 정반대로 꿈과 희망입니다. 오늘 고생한 만큼 내일은 더 잘살게 된다. 선진국 부러워할 것 없다. 우리도 선진국 국민이 될 수 있다. 이런 꿈과 희망들은 차츰차츰, 차근차근 현실로 이루어지게 해준 것이 바로 지난 50년의 경제발전 역사입니다. (…) 이렇게 국민 모두는 자기들의 꿈과 희망이 경제발전을 따라 이루어지고 현실이 되는 것을 똑똑히 체험했고, 생생히 실감했습니다. 그 경제 발전을 주도한 것이 누굽니까, 바로 기업들입니다. 그중에서도 대기업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은 몇십 년에 걸쳐서 '기업들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라는 생각을 마음속 깊이깊이 하게 되었고, 그 확고한 믿음은 뼛속 깊이까지 아로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꿈은 단 하나, 더욱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잘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목표는 선진국처럼 국민소득이 4~5만 불 되는 것입니다. (…) 이런 현실은 앞으로 갈수록 심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기업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은 더욱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자들은 이런 뚜렷하고 명백한 생각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인터넷에서 아무리 기를 쓰고 나대 보았자 세상 사람들은 끄떡도 하지 않지 않기 때문에 다 헛짓이고, 공염불일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더욱더 잘살기를 원하는 한 '기업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은 그 어떤 종교의 주문보다도 신통력이 강하고 강력합니다. 그러니까 아무 염려 안 하셔도 된다 그겁니다(p.408~412)." 

  

  어쩌면, 기업이 이렇게 부패하게 된 것은 우리, 즉 국민들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동안 선진국(미국이나 벼락부자가 된 중동)을 부러워하며,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썼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대기업의 비리까지 허용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비리는 절대 국민들을 잘살게 할 수 없다. '기업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대기업이 부패하도록 키웠고, 결국 그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은 후, 대기업의 비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왠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조정래 작가의 힘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 즉 강기준이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서 일광그룹을 떠나는 장면은, 돈만 추구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다. 우리가 '돈'이라는 것을 위해 대기업의 부패를 인정했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의 큰 실수이다. 왜 우리는 정치의 잘못을 보면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면서도, 기업의 잘못은 묵인하는가? "정치=경제"라는 공식은 무시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동안 모순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인가? 조정래 작가에 따르면, 그렇다. 그것도 50년 동안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정치민주화를 이룬 후, 자발적 복종 때문에 경제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 분명 우리나라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킨 것은 기업들의 공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비록 그들이 그런 공이 있다고 해도, 지금 그들이 벌이는 것은 그들의 공을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고 있다는 것을. 박재우의 말처럼, 경제가 국민들에게 주는 것은 "꿈과 희망"이지만, 기업들의 비리는 "꿈과 희망"을 붕괴시키고, 그것을 빙자하여 수많은 절망을 안겨준다. 조정래 작가는 정치민주화 이후, 아직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성을 생각한다』와 『굿바이 삼성』 같은 우리나라의 대기업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책 역시, 우리들이 그들의 부패를 인정해버렸다는 것을 고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정래의 문학은 고발의 문학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발함으로써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 조정래 작가는 분명 이것이야말로 자신에게 내려진 하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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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1-2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간단히 이 책 읽고 메모 남겼는데

주인장은 장문의 감상문을 썼네요 ^^

starover 2011-01-24 19:16   좋아요 0 | URL
ㅎㅎ 다이조부 님 감사드립니다.

다이조부 2011-01-2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우연인지 작가의 의도인지는 알수 없지만

삼성을 연상하는 그룹 태봉 은 웃겨요~

내조의 여왕 의 멋진 재벌 윤상현 태봉이 가 생각나서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