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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온 -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서 ㅣ 부글 클래식 boogle Classics
칼 G. 융 지음, 김세영.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6년 9월
평점 :
돌이켜 보면, 믿음을 지키는 자는 늘 소수였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거쳐 초대 교회, 종교 개혁과 근대, 세계 대전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면서 신앙의 입지는 항상 좁았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믿음을 지키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는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이제 문명의 힘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데 하나님을 무엇 하러 믿느냐고 따지는 세력이 나타날 것이다. 그에 대해 항변할 의지를 잃은 그리스도인은 현실에 순응할 텐가, 아니면 끝까지 좁은 길을 걸어갈 것인가?
칼 구스타프 융은 기독교,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해체 분석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는 언제나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대체 그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들이 믿어 왔는가? 대체 그 안에 어떤 비밀이 있기에 아무리 억누르고 피하려고 해도 그의 존재가 심령에 다가오는가? 융은 영지주의와 신화의 상징을 총동원하여 특정한 결론에 이른다. 이른바 "끝과 끝은 통한다"는 것일까? 인간의 원형에 존재하는 그림자, 곧 인격된 억압의 원리를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완전한 선이 악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우로보로스를 비롯한 많은 도식과 표를 이용한다. 그러면서도 악이 선의 부재가 아니라고 명명함으로써 결점을 최대한 보완한다.
사실 영지주의가 언급되면서 집중력을 많이 잃었다. 내 지식이 부족한 탓이리라. 다만, 왜 저자가 『아이온』을 글의 제목으로 삼았는지는 명시가 된다. 영지주의자의 주장 속에서 신은 의식도 없고 실질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아닌, 반대되는 것이 전혀 없는 '니르드반드바' 같은 존재이다. 그는 영원히 젊고, 남자이며 동시에 여자인 '불로의 아이온'이라고 불린다. 그는 자체 안에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자신은 그 어떤 것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스타프는 신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하면 설명할 수 있는지 꽤 고심을 했다. 영지주의 역시 모순과도 같은 언어 유희 속에서 신을 정의하려고 했다. 영원이란, 초월자란 본래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인간은 신의 이해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 듯하다. 이 논리가 성립하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자들은 자기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내적인 체험에 의존하는 무지몽매한 자가 된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는 자들을 미련하고 불쌍한 자들로 만든다. 그래서 기독교가 주류 사회였던 유럽 사회에서 이러한 주장들은 종종 공격을 받았다.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언제나 기독교는 외부자의 관점에서 신랄하게 비판해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모든 자들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융은 삼위일체 교리가 현대인에게 역사적 괴짜로 해석되며, 교의가 개인의 내적 경험을 잇는 다리가 허물어져 버림으로써 신앙이 그 자체로 신성한 경험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이런 목소리가 행여나 믿음이 약한 자들의 마음을 꺾을까 염려하는 이들은 융이나 니체, 다윈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치부하고는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에서 어떤 것이 완벽한 주장일 수 있을까? 그분은 인간의 논리를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그분의 거룩함을 조금도 훼손할 수 없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를 조롱하고 모독했으며, 그의 부활을 부인했으나, 그분은 지금도 전 인류의 마음 속에 계신다. 그러니 무슨 반박이 두려울까?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의 소리를 경청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담담하게 증언하고 싶다.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영원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 땅의 우리는 그것의 가치를 매도하기에 바쁘다. 어떤 이는 신이 심심하지 않기 위해서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영원이 해소할 수 없는 저주이고, 차라리 유한함을 택하겠다고 선언한다. 글쎄,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개념인 영원 속에서 나는 이미 주님과 교제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그분은 자신의 나라를 이루셨고, 마르지 않는 사랑을 자녀들에게 더하여 주신다. 그 영원을 기꺼이 저버리는 것이 도리어 미련한 일이 아닌지. 그러니 나는 이 땅에서 충분히 미련해도 좋다. 조금 부족해도, 실패해도, 손해 봐도, 상처 받아도 괜찮다. 영원한 가치와 맞바꾸기에, 이 세상의 것들은 너무 사소한 것들이 아닌가? 다만 이 유한한 세상에 머문 시간을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유한함 속에서 영원을 꿈꾼 자들에게 진정한 소망이 있다. 주님께서 모두에게 선물하신 인생을 누리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