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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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은 실로 인간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는 '괴베클리 테페'나 고대 건축물 등은 건축이 인간이 살아가는 양식의 결정체이자 문명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임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가장 공감했던 것은 도로의 차선이 늘어날 수록, 마주 보는 공간의 거리는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신호등과 지하 차도가 잘 발달되어 있어도, 우리는 건너지 못하는 차선 너머의 공간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고 도시를 바라보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시각은 접근 자체가 다를 것이다.


 저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유튜브를 통해서였다. 이 글을 쓸 당시인 2018년에는 유튜브 시장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아서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약 4년 전부터 꾸준히 영상을 게시해 왔다. 그를 구독하지는 않았고, 내가 본 컨텐츠를 리뷰하는 영상으로 많이 접했는데, 건축가이지만 동시에 인문학자로서의 면모를 종종 보인다.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도 그의 철학적 단상이 종종 담겨 있는데, 정통 인문학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피력하는, 그러면서도 전문 지식이 부족하지 않은 저자의 역량에 놀랐다. 그는 건축가이자 교수지만,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목적도 "화목한 세상"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요컨대, 이 책은 건축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담기보다는 건축을 중심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해석하려는 인문 서적에 가깝다.


 우리 모두가 유현준 교수처럼 전문적으로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팔방미인처럼 다양한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분투할 수는 없다. 죄다 똑같이 생긴 건물은 많고, 예술성을 갖춘 건물은 적은 이유도 그것에 있다. 누군가는 돈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건축물은 특별한 목적성을 가지고 지어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는 창의성과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건축적 역량을 가진 인재가 드물다. 한편, 건축을 전공하면서 인문학과 예술을 공부하는 이들도 거의 없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이 지으려는 건축과 전혀 무관해 보인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분명히 말하는 것은 어떤 건축물이든 세상의 법칙과 문화와 무관하게 우뚝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고층 건물도, 초라해 보이는 주택도 모두 사회적 맥락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아직도 집을 그저 '거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인식에 대한 필자의 탄식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한 시각을 가진 채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지식을 많이 쌓는다고 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모든 지식에는 책임이 있다. 한 번 알게 된 이상,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아는 만큼 바뀌어야 한다. 무단횡단과 불법 쓰레기 투기가 도시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또는 환경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그 일을 멈추어야 한다. 도시마다 고유한 가치를 지녀야 하며, 선진국의 성공 사례를 무작정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말에 반응하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학교 공간을 시민들에게 부분적으로 개방하고, 아이들이 공원처럼 누비게 하라는, 감옥 같은 디자인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려면, 정말로 내가 아닌 미래 세대의 아이들을 아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책을 읽을 때, 멀리 떨어져서 정보를 추출하는 데에 급급하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매체를 접할 때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교류할 때마다 기꺼이 삶의 기준을 바꿀 준비가 된 사람에게 세계에 대한 풍부한 인식이 열릴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살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뗄 수 없다. 모두가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가 정답이라고 외칠 때,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집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정답이라고 간주되는 인생의 경로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싶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은 똑같은 공간을 다른 식으로 사용할 것이다. 겉보기에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럴 때는 타인의 공간을 사용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살펴보자. 아무리 땅이 많은 사람이라도, 집 밖을 벗어나면 남들이 가진 땅 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설령 모든 땅을 보유한다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구축한 세상에서 영위해야 한다. 나는 그것에 감사해 하는가? 나를 있게 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인정하는가? 삶의 기준을 바꿀 때, 기존의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다시 돌아가도 좋으니, 한 번쯤 내 세계관을 바꾸는 도전을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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