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와 죽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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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망각의 반대편에 서 있다. 잊힘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누구나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 한다. 죽음은 망각으로의 지름길이기에,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은 당연한 것이다. 전방의 최전선에서 매일의 죽음을 목격하는 병사에게 간만의 휴가란 얼마나 달콤할까! 선전 속에서 늘 승리하는 조국의 품에 돌아가는 것, 아니 솔직해지자면 2년 만에 가족을 볼 수 있다니, 그래버가 느낄 환희란 엄청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파괴된 고향과 실종된 부모였다. 그의 가족은 전쟁의 폭격 속에서 소실된다. 이야기가 경과되면서 그래버의 가족도, 그래버 본인도 망각의 물결에 휩쓸린다. 누가 그들을 기억해 줄까? 


 나는 유럽 문학이 너무도 좋다. 돌이켜 보면, 내가 문학을 사랑하기 시작한 계기도 유럽 작가의 소설들이었다. 영국의 조지 오웰, 프랑스의 카뮈와 생텍쥐페리, 아일랜드의 제임스 조이스,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 등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 읽었던 레마르크의 『개선문』이 준 인상이 여전히 선명하다. 전쟁 속에서도 꽃피우는 사랑은 늘 강렬한 느낌을 준다. 역경을 뚫고 희망을 꿈꾸는 것은 그 자체로 멋진 일이다. 레마르크가 독일 작가였다는 사실은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반전 소설의 대가인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나치 세력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국적을 박탈당했다는 사실 역시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와 전개는 여느 전쟁 소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전선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생생한 묘사는 레마르크의 특기이며, 그로 인해 상실되는 인간성과 참혹함은 많은 전쟁 문학에서 봐 왔던 것이다. 그들은 인류의 역사를 통째로 바꾸어놓은 전쟁의 한복판에 고립되어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에게 기억에 남는 부분은 중간 장면들이었다.『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구성은 '러시아-독일-러시아'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히려 그래버를 절망과 위기에 몰아넣는 공간은 전장 한복판이 아닌 그의 고향 일대이다. 특히 엘리자베스와 결혼을 작정한 그래버가 그녀의 아버지가 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이 들통날까 봐 노심초사하는 부분은 전쟁이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독일의 시민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히틀러의 독재 체제는 독일 군인들과 국민들을 가해자로 만드는 동시에 피해자로 바꾸었다. 그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비밀 경찰에 폭로하며 전국민적 세뇌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불편한 진실까지 고발하는 것이 반전 문학의 의무임을 생각한다면, 레마르크는 제 역할에 충실한 셈이다.


 나는 이 소설을 삶과 망각 사이를 누비는 그래버의 여정으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삶이란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순간의 연속이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그는 부모님의 존재를 기억해야 했고, 파괴된 옛 집을 간직해야 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와의 사랑을 통해 미래를 기약하고 싶었다.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아무도 그를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그 모든 수고가 무슨 보람이란 말인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겠지만, 조국의 영광이니 총통의 인정 따위는 아무렴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그래버에게 아이를 낳자고 설득하는 부분은 이 소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들 중 하나인데, 여기에서도 그녀의 숨은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아기라고! 우리가 이 전쟁에 적응한 것처럼 그 애도 자라면서 새로운 전쟁을 맞이하게 될 테지. 그 애가 태어날 세상이 얼마나 비참할지 한번 생각해 봐. (…) 평화로운 시대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우리 주위는 온통 황폐해졌고 대지는 오랫동안 독으로 가득할 거야. 그런데 어떻게 어린애를 가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바로 그래서 필요한 거예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왜?" 

 "애들을 그런 환경에 맞서 싸우도록 교육하기 위해서죠. 만일 현재와 같은 사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야만스러운 사람들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찌 되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누가 이 세상에서 정의를 다시 실현할 수 있겠어요?" (p. 478~479)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엘리자베스는 확고한 입장을 띤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그래버를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도 숨어 있다. 이번에 휴가가 끝나서 전장으로 떠나면 부모님을 잃은 그래버를 누구도 기억할 수 없다. 엘리자베스가 기억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죽음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어서, 남아 있는 자를 과거에 남겨두기만 할 뿐이다. 그녀는 그래버의 자식을 낳음으로써 그를 기억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훗날 그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지금은 어디 있는지 물었을 때, 자연스럽게 전쟁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기억 방식은 아주 대담하고 거친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망각 대신 삶을 택했다. 그래버가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듯이, 엘리자베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지켜준다. 


 기억하는 일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간직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존재를 지금의 삶에 끌어들이려는 빠듯한 노력이다. 나는 그래버와 엘리자베스 부부처럼 전쟁을 겪은 사람도 아니고, 큰 상실을 겪은 적도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기억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낀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타인을 위해서라도, 기억의 행위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 기억이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돌이켜 볼까? 아, 우리는 기억으로 구성된 존재임을 잊고 있었나 보다. 제목은 바뀌어야 마땅하다. 기억과 잊힘 사이를 누비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나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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