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범우문고 259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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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과 상관없이 눈으로 덮여 있는 공간이 있다. 아니, 그렇게 기억되는 공간이 있다. 사방이 하얗게 덮여 모든 소리까지 얼어버린 땅에 설 때면 괜시리 숙연해진다. 『설국』에 처음 방문한 여행자들은 눈에 대한 저마다의 인상을 간직한 채 입장한다. 누군가에게 눈은 어린 시절의 순수한 기억이요, 또 다른 이에게 눈은 악몽의 전조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눈은 따뜻함의 다른 표현이다. 눈이 내릴 때가 그칠 때보다 훨씬 따뜻하다는 통념 때문만은 아니다. 환경이 추운 곳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따뜻해진다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일본 문학을 시도한다. 일본의 감성이 맞지 않다거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냥' 손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히가시노 게이고나 하루키 등의 유명한 현대 작가들의 소설들은 가끔 읽었지만,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오랫 동안 사랑받는, 이른바 고전을 읽어보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인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마음속에 간직해 왔던 숙원을 해소한 기분이다. 


 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아름답게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온천장에서 머무는 시마무라와 그가 만나는 게이샤들은 그들을 둘러싼 설국만큼이나 하얗다. 아름다우나 어딘가 비어 있다. 인물 간의 대화들이 특히 그렇다. 눈이 펑펑 내리는 길을 혼자 걸을 때 느끼는 적막과 쓸쓸함이 묻어 있다. 소설 말미에 누에고치 창고에서 불이 나는 순간에야 설국은 생동감을 확보한다. 고마코와 시마무라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대화는 "공허한 벽에 부딪히는 메아리와도 같은 소리"이다. 고마코가 좋은 사람이라는 시마무라의 말에는 어떤 진심이 담겨 있었을까? 독자는 추측할 뿐이다. 어쩌면 그것도 빈말일 수도 있고. 


 그리하여 드디어 흰 지지미를 다 바랬을 때 아침해가 떠올라 붉게 비치는 광경은 무엇에도 비유할 수가 없다. 남쪽 따뜻한 고장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다고 옛사람도 적어놓았다. 또한, 지지미 바래는 일이 끝난다는 것은 눈고장에 봄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으리라(171).


 『설국』을 읽을 때는 색채가 주는 인상을 기억하면 편리하다. 하얀색이 아닌 다른 색은 설국을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겨울이 하얀색이라면, 봄은 빨간색이다. 온천장에서 난 화재는 봄을 앞당기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봄이 온다는 것은 시마무라가 떠나야 하며, 고마코와의 사랑도 끝남을 의미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존재한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 자리에 계속 머물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움이 있어야 할 자리가 온통 비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환상으로 살아가는 나그네라면 떠남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은하수는 아름답게 비어 있는 것을 대표한다. 별과 은하수는 아름답게 빛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다. "은하수는 또 이 대지를 안으려고 내려오는 것 같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았을 때 아름다운 법이다. 아름답다고 해서 별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 온도에 타버리고 만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은 사실 공포의 속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어떤 것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색깔에 반응한다. 낯선 색은 거부감을 일으키고, 눈에 익은 것은 차라리 아름답다고 믿는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는 것도 괜찮다. 어떻게 우리가 본질에 닿을 수 있겠는가? 우리도 아름다우나 비어 있는 존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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