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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덴 2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달러를 벌기 위해서는 몇 단어를 써야 하는가?" 이것이 잭 런던(Jack London, 1876~1916)의 삶을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글을 쓰는 노동자로 일컬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런던은 끊임없이 글을 써야 했고 그 결과가 200여편의 소설들과 500여편의 기사들, 그리고 수백 통에 달하는 편지들이었다. 창작의 결과로 돈과 명예를 원없이 쌓았지만, 말년에는 약물 중독과 지병으로 고통받다가 사망한, 삶의 모든 구간에 모순과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잭 런던의 삶은 그가 쓴 『마틴 에덴』(Martin Eden, 1909) 속 주인공과 매우 유사하다.
잭 런던은 먼지가 아닌 재가 되길 원했다. 그리고 말마따나 이루어졌다. 40년의 생애 안에서 그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굴을 약탈하는 해적이었다가 그 해적을 잡는 순찰대원이 되었고, 사회주의자로 오랜 기간 활동했으나 백만장자였고, 남태평양 제도를 일주하고 한국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으나 백인우월주의를 놓지 않았다. 그밖에도 금을 캐기 위해 알래스카로 여정을 떠났다가 실패한 일, 시장 선거에서 낙마한 일,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부랑자 감옥에 수감된 일 등이 있었지만, 생애 전반을 보았을 때는 그리 대단한 사건이 아니었다. 제3자의 시선에서 잭 런던을 판단할 때, 무엇이 그에게 가장 중요했는지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마틴 에덴』은 잭 런던의 삶에서 어떤 요소가 의미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 준다. "어떻게 해서 그는 글을 쓰는 노동자가 되었는가?" 그리고 "왜 아직도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지칭하는가?"라는 두 가지 물음을 해소해 준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은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루스를 만나기 전, 마틴 에덴의 삶은 단순하고 육체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교육받지 못했기에 구사하는 언어부터 풍습까지 소위 천박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루스를 동경하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속한 세계가 곧 자신이 지향해야 하는 곳이라고 인식했다. 학교를 다니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에 마틴 에덴은 책을 마구 해치우는 것으로 지식의 갈망을 해소했다. 하지만 마틴은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의 무지만 확인할 뿐이었고 책에서 배우는 내용이 실제의 삶과 괴리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루스의 일가와 그들이 속한 계층의 사람들과 만날 때 그는 언제나 실망했다. 마틴 에덴이 지향하는 가치는 궁극적인 진리를 얻고자 하는 끝없는 갈망이었으나 다른 이들의 마음은 시간을 적당히 때우는 소재의 별볼일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루스, 그리고 그들이 속한 세계로부터 분리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 어느새 마틴의 정신을 잠식한, 지식에 대한 강박관념과 잠재적인 특권의식이 그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 에덴은 스스로를 노동자의 세계에 있다고 간주했다. 어느새 그가 쓴 글은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어 부와 명예를 순식간에 거머쥐었지만, 그는 상류층이나 지식인들과의 모임을 경멸했다. 그가 굶주리기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썼을 때 거절당했던 글들이, 명예 때문에 갑자기 엄청난 판권을 받는 글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 세상에는 지식만으로,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루스와의 사랑이 그랬고, 작가로서의 성공이 그랬다. 마틴은 루스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와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었지만,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마틴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결국 남들보다 높은 곳에 섰을 때,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설의 결말부에 깊은 물로 스스로 뛰어드는 것은 원래 그가 속했던 세상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헛된 발버둥에 가까웠다. 죽음의 찰나에 그는 어떤 빛과 희망을 발견하는 듯 했으나, 실상은 어둠뿐이었다. 잭 런던의 삶이 그랬듯, 마틴 에덴의 삶은 모순투성이였다. 작가는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표현했지만, 그는 어떤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 남았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활동할 당시에는 비평가들로부터, 동료 작가들로부터 배척당했고 시간이 지났을 때, 어떤 대중도 그를 기억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왜 21세기의 독자들이 『마틴 에덴』을, 그리고 잭 런던을 다시 읽어야 할까? 작가가 했던 말을 조금 바꿔서, '흙이 아닌 물거품으로 살아가기'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우리가 그들(잭 런던과 마틴 에덴)처럼 매 순간에 전력을 다해 살아갈 수는 없다. 또한, 그들이 지녔던 편협한 사고방식까지 계승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분명히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았고 작가가 품었던 사고방식이 언제나 옳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활자를 비집고 올라오는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향한 의지를 본다. 강력한 정신은 시대와 공간, 그리고 언어를 초월하는 법이다.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순간의 희열과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기대, 그리고 타인에게 이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애틋함은 직접 겪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때로 그에게 글쓰기는 돈을 벌기 위한 노동으로서 인식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렸을 적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읽었던 책들이 그의 세계를 형성했듯이, 마지막에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글쓰기를 통해 성취하고자 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언제 재가 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 속에서 기억하고 싶은 스스로의 조각을 적어놓기를 원했으리라. 그는 스스로 흔적이 남지 않은 물거품이 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읽혀짐으로써 기억되기를 바랐을 테다. 그렇다, 당신의 의지는 어쨌든 전송되었다. 어떻게 끝날지는 몰라도 나 역시 마음 닿는 데까지 가보겠다. 당신이 굳게 믿었던 사랑의 힘을 기억하며.
"언제부터 나를 사랑했나요?" 그녀는 속삭였다.
"처음부터, 당신을 처음부터 본 바로 그 순간부터, 그때 나는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미쳐 버렸고, 그 이후로 점점 더 미쳐갔어요. 지금 나는 최고로 미쳐서, 거의 정신 이상이에요. 너무 좋아서 머리가 돌아버렸어요." (p.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