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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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살면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느낀다. 때로는 그 일이 너무 거대해서 손쓸 의지조차 잃어버린다. 그리고 대부분은 어떻게든 흐름을 바꾸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상처를 받는다. 특히 인간관계는 사소한 변수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리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확신할 수 없다. 연인이, 가족이, 친구가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 괴로워진다. 그러나 그 나약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픔을 드러내면 관계에서 주도권을 뺏긴다는 두려움이 거짓말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괴로워하다가, 가장 원하지 않은 순간에 최악의 방식으로 감정을 폭력적으로 표현한다. 결과는 해결은 커녕 사태를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처음에 다자키 쓰쿠루는 친구들 사이에서 버림받은 일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그와 가까이 지냈던 네 명의 친구들은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그와 손절했다. 다자키는 그 아득한 부조리 앞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버림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 놈이라고, 나처럼 남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개성도 없는(그만 유일하게 이름에 색채가 없었으니까) 사람을 떠나는 게 당연하다고. 그 역시 처음에는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거의 몇 달 동안 삶과 죽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했다. 그러다 그의 연인인 사라가 쓰쿠루의 마음 속에 잠겨 있던 상처를 끌어올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졌다 해도 아픔의 깊이는 변함이 없었다. 다자키 쓰쿠루는 용기를 낸다. 다시 마음의 어두운 방에 거짓말을 쌓아올리는 대신, 더 상처가 깊어진다 해도 진실과 마주하자고. 나는 그의 진실함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과거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친구들은 고향에 남아 있고, 나 혼자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다자키 쓰쿠루와 평행선 상에 있다. 다만 나는 그 친구들과 갑자기 끊어지면 정말 힘들겠다는 상상만 해 보았고, 이름에 색채가 없는 청년은 실제로 이별을 겪은 뒤 오랜 시간 동안 아픔을 이겨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 그의 삶이 부럽지도 않다. 그렇다고 안타깝지도 않다. 다만 작은 희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솔직했다. 나와 그의 결과는 바꾼 것은 용기였다. 


 고통은 받아들여야 이해할 수 있다. 다자키 쓰쿠루가 차츰 밝혀낸 진실, 그것은 가볍지 않았다. 시로의 눈물로 시작된 그의 추방은 모두에게 상처를 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도망쳤고, 구루만이 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다자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다자키의 잘못이 되었다. 그때 아픔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솔직하게 다가갔다면 다섯 명의 미래는 바뀌었을까? 만약 내가 그룹의 구성원 중 일부였고 목격자의 입장이었다면 방관했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을까? 나는 대부분 전자를 택했다. 내 문제가 아닌 그들만의 문제라고 여겼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내가 목격자가 아닌 입장이라면,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아마 상처를 준 입장이라면, 나도 모르게 그랬을 것이다. 그 사람과 나는 다르다. 그래서 이해가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내 잘못을 인정하자.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이 점점 커져 서로를 집어삼키기 전에 드러내자. 나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관계를 망가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 대신 최선의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자. 


 모든 일을 내 힘으로 해결할 수는 없음을 깨달은 뒤, 생각보다 단순한 방법이 떠올랐다.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다자키는 자신이 색채가 없고, 개성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색채는 개성이 아니니까. 그 역시 자신만의 특징이 있었다. 그 다름을 인정한 뒤에야 슬픔을 나눌 수 있다. 고민하고 노력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관계가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다 받아들이는 일이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이 고통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구나, 라고. 용기와 비난 사이, 희망과 망상 사이, 신념과 고집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잠시 나를 내려놓자. 그리고 한 번의 기도를 올린다. 저 사람은 나와 다르다, 그 사실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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