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짙푸른 봄이 돌아오면

 따가운 그 햇살 아래서

 만나리라 우리들은

 손꼽아 기다린 날처럼

 만나리라 우리들은

 모두 어제였던 것처럼

 -페퍼톤스, <청춘> 중


 

 나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 책이 라틴어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실제로 『라틴어 수업』은 라틴어 경구를 내세우는 인문학 강의에 가깝다. 한동일 교수는 끊임없이 겸손해 하며, 그 특유의 재치와 지식으로 청중들을 매료시킨다. 그런 그의 모습이 책장 너머 나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의 대담함과 노력이 다른 교수들한테 영감을 주었다.


 몇 년 전, 나는 '문학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을 수강했다. 아마 그 강의가 내 인생의 첫 번째 대학교 수업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강의실은 고등학교 시절 상상했던 계단식 대강의실이었고, 나는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교수님은 강의 시간보다 약간 늦게 들어오셔서 한 학기 동안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 계획인지 설명하신 뒤 "수업 끝!"을 외쳤다. 시작한지 10분만이었다. 나를 비롯한 새내기들이 "이게 대학교구나"라고 떠들고, 재학생들도 기쁨의 미소를 짓는 와중에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그냥 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대신 밖에 나가서 봄 하늘을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사실 원조는 "Prima schola alba est(첫 수업은 휴강입니다)"를 외치던 한동일 교수였다.


 저자는 매 강의마다 우리가 알고 지냈던 가르침을 전해준다. 나의 장점에 얽매이지 않고 단점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공부를 삶의 일부로 여기고 끊임없이 해야 한다.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에 집중하라. 나이에 스스로를 제한하거나 나이로 타인을 평가하지 마라. 이것은 수많은 교훈들 중 내 기억에 남은 그의 메세지이다. 나는 페이지 너머로 그의 열정과 진심을 느꼈고,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조금 냉정하게 생각하면, 내가 기억하는 강사의 문장은 곧 잊힌다. 머릿속에 각인되겠지만 실천하는 법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기억의 저편으로 넘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현재에 붙잡히는 인간의 한계다. 상처주는 말, 소문은 쉽게 기억되지만 나에게 필요한 말이나 감사 인사는 금방 잊힌다. 그래서 나는 지혜를 말하기보다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문장을 말함으로써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매체를 보여주고 스스로 깨닫게 만들자는 것이다.


 최근에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의 취지는 그동안 시를 잊고 지냈던 현대인들, 학창 시절 시를 문제로만 접했던 청년들에게 시의 아름다움과 인생에 대한 조언을 전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나에겐 조금 아쉬웠다. 기억에 남은 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최근 방영된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드라마에 인용되는 시들이 청자의 마음에 와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보다는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을 이해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고, 그들의 입장에서 시의 내용이 더 절묘하게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내가 들었던 '문학의 이해' 수업 얘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그 수업을 열심히 들었고 좋은 학점도 받았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까 말했던 "봄 하늘을 보라"는 교수의 메세지였고, 다른 하나는 교수가 보여준 <족구왕>이라는 영화였다. "모두가 가는 길이 정답이 아니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자, 그것이 청춘이다"라는 영화의 주제는 내가 들었던 수업이 지향하는 바였다. 그리고 영화의 끝부분에 흘러나오는 페퍼톤스의 <청춘>, 이것이 전부였다. 다른 말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결국 우리는 망각하는 존재이므로 『라틴어 수업』에서 봤던 라틴어 문구, 이 독후감의 내용, 그리고 저자가 준 감동마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보여주기를 통해 나의 메세지가 조금이라도 오래 남아 그 사람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준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내가 보여주려는 방식은 문학이다. 문학은 보여주는 글이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잊지 않고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한다. 봄 하늘을 즐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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