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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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들어 신모씨 등의 도박문제로 연예가가 시끌시끌 하다. 혹자는 돈을 벌어도 당사자가 번 것이고, 돈을 날리거나 혹은 빚을 지고, 법률적인 처벌을 받더라도 개인의 문제라며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것이 못된다고 하더라. 하지만 도박 뿐 아니라 어떤 문제든 마찬가지다. 그저 오락처럼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 한 개인을 폐인으로 몰아가고 가족과 지인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대중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주는 행위가 어떻게 개인의 문제란 말인가, 라는 것이다.  

 

  핑계없는 무덤 없다고 당사자들이야 나름 할말은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금전적인 문제에 있어서 쉽게 벌기 때문에 더 큰 욕심이 생기는 것이고 쉽게 유혹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땀 흘려 벌어들인 돈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가치를 따질줄 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문득 1980년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난다. 경제계발 5개년 계획, 새마을 운동 등 주민들을 집단으로 동원하던 각종 사업들이 넘쳐나고 자고 일어나면 우리 나라가 발전된 모습이 눈에 확확 들어오던 시절...  우리도 이제 미국이나 영국같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이 곧 오리라 어린 마음이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비만 오면 흙탕물을 튀기면서 놀던 집앞 도로는 깨끗하게 포장이 되었고 연탄보일러가 기름보일러로 대체되고 인근의 한옥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깨끗한 양옥으로 다시 빌라, 아파트로 바뀌었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 속에 세워진 '고도성장'은 숱한 부실과 비리를 주춧돌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땐 정말 알지 못했다.  

 

 <강남몽> 이 책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시점을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 성장에 가려진 대한민국의 어두운 한 면을 그대로 대면하게 해준다. 그러고 보니 서울 한복판에서 아파트가 무너진지가 벌써 15년 전이다. 성수대교의 충격이 아직 잊혀지지도 않은 시점에 또 한차례의 '무너짐'을 겪어야 했던 국민들의 심정은, 그 충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언젠가 누군가 한번쯤은 그 시절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것이라 추측만 했었는데 결국 황석영님이 그 역할을 맡은 샘이다.

 

첫 부분은 90년대 중반, 좀 산다하는 집 사모님의 전형적인 일상으로 그려진다. 일하는 아줌마가 집으로 들어서자 사모님의 외출이 시작되고 사우나에 마사실에 거기다 젊은이들의 몇달치 월급과 맞먹는 돈을 가방 하나로 가뿐히 소비해 주신다. 연세 지긋한 김회장의 후처로 살면서 자기와는 나이가 비슷한 자식, 며느리들을 챙기는 주인공 선녀의 일상이야말로 위화감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던 선녀는 순식간에 붕괴된 백화점에 깔려버리고,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지나온 과거를 회상한다. 

 

  평범한 집의  맏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병수발로 기우는 가정형편, 어머니의 강요에 못이겨 여상에 진학하고 반반한 얼굴로 화류계에 진출하여 잘나가는 마담이 된다. 부자집 도련님과 불장난같은 동거도 하고 진심어린 첫사랑도 겪고 어깨들의 보호를 받으며 물장사로 부를 쌓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사상누각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건 또 뭔가 싶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김회장의 과거때문이다. 김의 가난했던 어린시절과 만주에서의 생활, 큰 뜻을 펼쳐 보려했던 꿈과 조국애를 뒤로하고 시대에 편승하여 승승장구하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어찌보면 선녀의 인생과도 흡사하다.   

 

 단락이 바뀔수록 전혀다른 카드를 꺼내보는 것처럼 선녀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변인물들의 과거사가 하나씩 드러난다. 신기하게도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모두가 비슷한 틀 안에서 자란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각각의 스토리는 정신없이 전개되는듯 하면서도 흔들림없이 하나의 축을 향해 연결되어 있고, 미군정 하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마치 병풍처럼 펼쳐보인다. 이승만 정권의 집권, 여운영 암살, 제주민주항쟁, 5.16쿠데타, 제 5공화국, 삼김시대, 경제성장과 부동산 폭등, 정경 유착 등 아마도 작가는 이 한권의 소설속에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모두 담으려 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저자가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때가 떠오른다.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시던 천진난만한 모습과 이처럼 무거운 주제가 매치되지 않아 당혹스럽긴 한데, 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면서 거친 풍파에 시달려온 저자의 인생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서 조금은 이해가 된다. 책 읽는 내내 암흑가의 전문용어(?)들이 과한듯 하여 조금은 껄끄럽기도 했지만 대한민국의 문학사에 있어서 거목이라할 수 있는 인생 전반을 뒤돌아보며 제대로 지나세월 가슴속에 꽁꽁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마침내 쏟아내고야 말았구나 싶은...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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