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소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허삼관 매혈기>의 위화다. 3년 전쯤,처음 그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냈었는지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해야 했던 주인공, 몸에서 피가 빠져나갈 때마다 죽음에 점차 가까워지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을 위해 매혈 여정을 멈출 수 없었던 주인공의 삶을 대하면서 부모님 생각, 내 아이 생각, 가족이란 무엇인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치자 허삼관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되었고 그가 더이상 소설속의 인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이었다. 

 

 <딩씨 마을의 꿈> 이 책도 주된 소재가 바로 '매혈'이다. 정책적으로 매혈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되자 낙후된 농촌을 중심으로 피를 파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해가면서 모집인을 구하는 상황이 된다. 딩씨 할아버지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서 동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이다. 할아버지는 정부 관리의 요구에 따라 매혈을 위해 동네 사람들을 모으게 되고 딩씨 할아버지의 큰아들은 아예 사설채혈소를 차려 마을 사람들의 피를 뽑는데 앞장선다.  

 

 처음에는 피를 팔아 번 돈으로 가족을 위해 당장 뭔가를 해 줄수가 있었고 비료를 사서 수확을 늘리거나 가축을 키우는 등 마을의 살림도 점차 나아지는 듯 보였다. 젊고 혈기왕성한 남자들은 남들보다 자주 매혈을 해서 힘든 농사 일을 하지 않고도 편히 살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찾아든 열병으로인해 딩씨 마을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매혈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 열병의 이름은 바로 에이즈였던 것이다. 

 

 솔직히 책 읽는 내내 너무나 안타깝다, 라는 표현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을 정도로 멍~ 한 상태로 읽었다. 그저 실적에만 관심있는 중앙의 관리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시골 사람들, 그 가운데에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사람들...  너나 할 것없이 절망적인 상황,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현실인데도 불구하고 당장 오늘을 위해 아둥바둥 살 수 밖에 사람들을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 그 속에서도 열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멸시당하던 두 사람이 만나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아름답게 살려했던 그 마음만은 인간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줄지도 모르기에 죄송하다고 말이다. 정말 그렇다. 소설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원하고 복잡한 사색을 싫어하는 독자라면 결코 권하고 싶은 책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이 없으면 희망도 없고 행복도 없는 것, 딩씨 마을이 조금씩 붕괴되는 과정을 통해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했었지만 이 작품의 결과 또한 비극이라고 단정짓기는 이르다. 더이상 기대할 수 조차 없어 보이는 상황이지만 작은 희망의 씨앗만은 남겨져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힘을 얻는다.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결심한 것은 작가도 장르도 아닌 출판사 때문이다. 작년에 <적절한 균형>이라는 인도 소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었는데 장소와 시기만 다를 뿐 '고통과 희망' 이라는 점에서 이 책과 흡사한 면이 많다. 거기에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위화의 작품을 연상시킨 면도 있고 말이다. 책장을 한장씩 넘긴다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물질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잠시 쉬어갈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이란 화두는 성능 좋은 제어장치임에는 틀림없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가장 소중한 내어주면서까지 허망함을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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