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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그들이 왔다 -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 누구인가?
이상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의 경우 재임 기간동안 잊을만하면 신사 참배를 강행하여 주변국과 마찰을 빚곤 했었다. 당시 그는 총리라는 신분으로 참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일 뿐이라며 억지 논리를 펴기도 했는데 자신이 총리라는 직위를 버리지 않는 한, 사석에서 발언한 내용이나 행동이라 할지라도 공식화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리가 만무하다. 주목할 것은 그 무렵에 일본내 극우파 인사들의 황당한 발언이 이어지는가하면 역사 왜곡 문제가 심각하게 불어지기도 했고 일부 국민들의 지지 의사도 뻔뻔해지고 과격해지더라는 것이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참전 군인들의 유품을 전시한 곳에서 카미가제 특공대원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장면을 말이다. 특공 대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애국심에 감동하여 그리했다면 그는 분명 한 나라의 총리가 될 자격이 없으며 제국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일본의 발전과 아시아의 평화, 나아가 세계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시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정치가들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꽃다운 젊은이들이 제국주의에 희생되었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해야 옳다.
<1910년, 그들이 왔다> 이 책은 조선 침략과 태평양 전쟁에 연루된 21인의 일본인을 설명한 책이다. 일본은 임진왜란때 잠시 조선에 주둔했었던 것을 마치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라도 된 것인양 역사를 날조해가며 '조선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를 폈다. 중국에는 황제가 있고 일본에는 천황이 있으니 중국을 따르는 조선이 일본을 섬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고 말이다. 이와같이 정한론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중심에 서있었던 인물 대부분은 모순과 억지로 일관하며 제국주의의 칼날을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흔히 일본의 민족성과 문화를 '국화와 칼'에 비유한다. 이 책에서도 '찻잔속의 비수'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차를 마시는 행위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소박함을 추구한다던 사람이 다도를 벗어나는 순간 칼을 휘두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침략자가 된다는 사실이 정말 아이러니하다. 근대화에 있어서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계몽주의와 민주주의, 합리주의를 수용하면서도 결국은 제국주의를 최우선으로 택했고, 패전 후 조선과 아시아에 대한 반성은 없으면서 원폭을 내세워 가장 큰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철저한 이중성에 말문이 막히고 가끔씩은 지긋지긋하다. --;;
일본이 조선을 강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던 다른 나라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국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다른 나라가 약소국을 점령하는 것에 대해 묵인하는 식으로 서로 나눠먹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1920년대 말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속주국의 자원과 노동력이 절실해졌다는 이유도 제국주의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 오늘날 일본은 손꼽히는 경제 대국으로 우리와도 정치, 문화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나라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뉘우침 없이는, 제대로 된 과거 청산 없이는 결코 두 나라의 동반자적 관계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1910년, 그들이 왔다> 어찌보면 참 평범하고 담담한 제목이다. 그 속에 감추어진 이중성과 수많은 사람들이 흘렸던 피를 생각하면... 백년이든 천년이든 우리 후손들에게 그 날의 교훈을 되새기게 해서 우리 역사를 새로이 써나가야 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의 야욕에 이 땅이 희생된 것은 사실이나, 이미 조선이 패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정조 때 잠시 중흥기를 맞지만 정조 사후에 걷잡을 수 없이 내리막을 치닫는 가운데 허수아비 왕을 내세워 사리사욕만 채웠던 정치인들과 고통받는 국민들의 모습이 구한말이라도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병탄 시나리오의 주역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치밀하고도 철저하게 준비해 왔는가를 생각하면 우리는 순진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지 일본의 만행에 대해 사죄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남북관계를 비롯해서 정치,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들앞에 당당할 수 있을 만큼 힘을 키우고 국제 문제에도 보다 관심을 가져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1910년, 그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