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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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인가 로마의 멸망과 지중해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팍스 로마나 이후 지중해는 이슬람 해적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해안선을 따라 높다랗게 세워진 망루들을 보면서 당시 해적의 출몰을 감시하던 병사의 긴장과 두려움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때의 참혹함을 뒤로하고 지금은 버려지거나 혹은 관광명소가 된 망루들이야말로 세월의 덧없음이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날 죽일 거요....? 지금?"

"아니요. 바로 그 얘기를 하려고 온 겁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그냥 죽이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전에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군요. 당신을 좀 더 알아야 할 필요도 있고, 또 당신이 몇 가지 알아야 할 일들도 있고요. 난 당신이 그것들을 알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물론 결국 그렇게 된 이후에는 당신을 죽여버리겠지만. (p.48)"

 

 주인공 파울케스는 버려진 망루에서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다. 그는 전직 종군기자로 전쟁터를 누비며 삶과 죽음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사진은 특정 상황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100마디 말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를 향해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대야만 하는 일은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게다가 점차 무감각해지는 스스로의 모습과 진실성이 결여된 사진을 보면서 회의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직접 전쟁화를 그리게 된 것이다.  전쟁터를 터났지만 전쟁터(망루)를 벗어나지 못하고, 더이상 전쟁을 목격하지는 않지만 과거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깊은 연민과  비애가 느껴진다.  

 

 어느날 그를 찾아온 한 남자가 있으니 자신을 아주 오래전 파울케스에게 사진이 찍힌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파울케스를 죽이기 위해 오랫동안 찾아다녔다고 말하는 남자, 하지만 금방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남자,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는 그렇게 사흘간이나 계속된다.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파울케스가 찍었던 사진들에 관한 것이었고 엄밀히 말해 그들이 겪은 전쟁의 비참함이자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게  사진 속 인물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나비효과'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특정 장소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 자체로 이미 서로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가정하면 지나친 생각일까?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다. 그들중 어떤 사람은 부부가 되고, 친구, 동료가 되었다가 생사를 함께하는 동지가 되기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스쳐지나가는 것 조차 때론 상대방에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이 수년에 걸쳐 결국 두 사람을 만나게 했으니 말이다.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이 책은 단순히 소설적인 흥미나 재미를 위주로 한 책은 절대 아니다. 전쟁이라는 소재 자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많고 묵직한 것처럼 내용도 상당히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전직 종군기자였다는 저자의 이력이 영향을 미친 것도 있겠지만 주인공이 회상하는 전쟁의 참혹함은 몇 마디 말이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픔이 극도로 북받칠 때 정작 눈물이 나지 않는 순간 만큼이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살상인가! 지구상 어느 곳이든 전쟁은 안된다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솟구쳤다.

 

 인류 역사와 전쟁의 역사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시대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문화가 발전하면서 법과 제도, 교육 수준 등 모든 것이 발전했음에도 왜 전쟁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리는 흔히 고대인들이나 아프리카 오지의 원시 부족들을 미개하다고, 문명화 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고대에 인신공희가 있었고 사실상 '인권'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인류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때는 그지 오래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전쟁'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과연 현대인들이 문명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긴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중국의 유명한 인문학자인 위치우위가 말하기를 "문명은 일종의 겉치레가 될 수도 있지만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있다. 그 마지막 지향점은 인류를 보호하는 길이다." 라고 했다. 사람들이 관습이나 규율을 만들고 법을 만든 것도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고 문화의 발전은 그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고대인들이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 먹을 것과 여자들을 얻기 위해서 전쟁을 치렀을 때보다 '이념'을 내세워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차마 못할짓을 하는 현대인들이야 말로 스스로를 망루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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