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이라는 것이 계획대로만 살아진다면 아무런 여한이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학창 시절에는 무난한 성적을 얻고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 졸업장에 남들이 알아줄만한 직장을 다니고 그런대로 괜찮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그렇게 늙어간다면, 중년 무렵엔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소리도 듣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더할 것 없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 알 수 없는 존재다. 내가 그렇게 이루고 싶었던 자리에 오르고 그렇게 가지고 싶은 것을 가졌지만 삶의 어느 순간 찾아오는 공허감이랄지, 마치 길을 잃은 듯함 당황스러움은 예상치 못했던 복병처럼 나타나 일상을 뒤흔들곤 한다. 그럴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가장 먼저 가족을 비롯해서 친구, 지인 등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떠올려 보지만 결국 극복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 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럴때면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간절해 진다.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이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서영은 님의 '산티아고 순례기'이다.  우선 저자에 대해서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름은 낯익은데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작품이 없는, 하지만 저자에 대한 소개글 만으로도, 특히 김동리의 여인이었다는 점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책을 읽은 후 그녀의 작품이 실린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당장 주문해야겠다고 결심했음은 물론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향해있던 문학계의 관심과 명예를 단호하게 내려놓고, '진정한 자신'을, 절대자를 느끼기 위해 순례자가 된다.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 두 제자중 야고보의 무덤(스페인식 이름이 산티아고)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이다.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길을 기준으로 대략 800km나 되다보니 며칠만에 끝날 여행은 아닌 것이다. 저자의 경우도 약 2달 가까이의 오랜 기간동안에 걸쳐 최대한 간소한 방식으로 숙식을 해결해가면서 도보로 이동을 했으니 흔히 말하는 '관광'과는 차원이 다른, 과연 여행자들의 로망이라 할만한 여행인 것이다.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한다는 말,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저 욕심부리며 아둥바둥 살지 말라는 교훈을 넘어서 더 깊은 의미로 와닿는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오로지 걷고 걸어서 완성되는 산티아고 순례를 통해 결국은 '나를 찾는다'는 것이 '나를 내려 놓는 것'임을 배운다. 길 위에서 만난 착한 사마리아인을 통해 신의 존재를 느끼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통해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고, 설사 거룩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상업적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에 분노와 허탈감이 들지라도,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이미 전과 다른 '나' 되었다는 것, 그것 만큼은 분명 가치 있는 변화일테니 말이다. 

 

 

밑줄 긋다

 

"음식, 극도로 간소해요, 옷차림, 옛날 순례자들은 단벌이었어요, 잠자리, 물론 불편하죠, 그나마도 얻지 못하면 노천에서도 잘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을 고생스럽다고 여기면 이 길을 걸을 필요가 없어요. (p.143)"

 

"착한 사마리아인은 단순히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평소에는 밥하고 빨래하고 손녀를 안아주고 바느질을 하는 일상인이지만, 고난받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즉시 하나님의 사자로 바뀌는 준비된 영혼이다. (p.297)"

 

"사람들이 누군가 자기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자기 존재가 허무하게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그 누구도 일단 존재했던 모든 것은 절대로 완전한 무無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완전한 무란 없다. 다만, 있음을 내포한 없음, 없음을 내포한 있음이 계속 생성과 소멸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없는 것은 다만 '나였던 존재'일 뿐이다. (p.348)"

 

"여기까지 오는 길이 고통스러웠으니 산티아고가 거룩하고 성스럽기를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일 수 있다. 산티아고가 설사 내 기대대로 거룩하고 성스러운 성지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 역시 표적에 지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영적 빛으로 거듭거듭 변환되는 삶과 말씀의 동화작용이다. (p.365)"

 

"위기에 처한 것은 엘리야가 아니라, 가뭄이 시작되었으나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줄 모르는 세상이었다.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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