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의 역사와 문화 - 동서문화 교류의 십자로, 실크로드의 요충, 돈황의 역사지리학적 통사
나가사와 카즈토시 지음, 민병훈 옮김 / 사계절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영원한 스테디셀러의 주인공 <어린왕자>에 나오는 말로 흔히 은유적인 표현으로 쓰이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살을 할퀴는 모래 바람과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강열한 태양, 살인적인 일교차... 하지만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물부족에서 오는 고통과 공포일 것이다. 사막의 한 가운데 오아시스가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실크로드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아시스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에 생사를 걸고 비단길을 횡단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횡단을 완수하기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 단지 그 이유가 다였을까?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탐험가이자 모험가, 문화전파자들은 상인이어야 옳다. 물론 초기의 비단길은 대상들의 이동경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나 결과적으로는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비단길을 통해 교류되었 것은 물건과 물건, 사람과 사람이 아니라 바로 언어와 문화, 마음과 마음이었다.

 

 <돈황의 역사와 문화> 이 책은 중국과 서역을 잇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 '돈황'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중국에서 서역으로 출발하여 1/3지점, 서역에서 중국으로 치자면 2/3지점쯤 되는 곳에 위치한 돈황은 말그대로 사막의 오아시스다. 돈황은 동서양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십자로였으며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다양한 민족,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돈황이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청조 시대 열강에 의해 반출된 문화재가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돈황의 막고굴을 관리하던 왕원록(왕도사)는 우연한 기회에 고문서들을 발견하고 청의 관리들에게 보고를 한다. 하지만 고문서의 가치를 알지 못했던 관리들은 엄청난 분량의 문화재를 옮길 경비나 보관할 방법이 없었기에 굴 입구를 막아 그대로 두라고만 지시 한다. 하지만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의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등 열강의 탐험가이자 약탈자들을 불러모으게 되고 재물에 눈이 먼 왕도사는 귀중한 문화재를 고스란히 빼돌리는데 앞장서게 된다.

 

 중국 정부가 뒤늦게 수습을 시작했을 때는 '안타깝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많은 문화재가 약탈된 후였고, 그나마 남아있던 고문서와 벽화도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시 열강이 가져갔던 문화재는 오늘날에도 반환 협상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돈황의 문화재가 약탈되고 파괴된 것이 어찌 왕도사와 지방의 관리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만은 수많은 문화재들이 해외로 밀반출되는데는 외국의 탐욕스런 손길 만큼이나 자국민의 무관심이 원인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한 편의 팩션을 읽는 듯, 잘 만들어진 사극을 보는 것처럼 깊이 몰입해서 읽었다. 2년전 쯤에 마쓰오카 유즈루의 <돈황 이야기>를 읽을 때도 소설처럼 전개되는 내용에 흠뻑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왕도사와 약탈자들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일본의 입장을 변명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아 기분이 좀 그랬었는데 <돈황의 역사와 문화>는 돈황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 돈황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덧붙임... 병인양요 때 빼앗긴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반환을 놓고 프랑스와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다. 1993년 고속철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프랑스 대통령이 외규장각 도서 한 권을 들고 국내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드디어 반환되는구나,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을 얻고나서 하는 소리는 국가 공유 재산에 대한 해외양도 불가 방침과 '등가등량(같은 가치와 분량의 문화재를 담보로 맡긴 후에 영구대여 형식을 취한다는 것)'의 원칙에 대한 반복 뿐이었다. 문화재 뿐만 아니라 세상 일이란 게 그렇다. 이미 빼앗겨 버린 것을 되찾는 것은 빼앗기기 전에 지키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아니 백만 배는 더 힘든 일이다. 그것만 기억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