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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벌써 14년이 지난 1996년도의 일이다. 아마도 특집으로 구성된 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2부작의 짧은 작품이었지만 시청하는 내내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주인공 역을 맡았던 나문희 님이 토크쇼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기를 당시 노희경 작가와의 만남은 마치 '운명'과도 같았고, 혼신을 다해 열연했던 어머니역은 연기 인생에서의 전환점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미 연기파 배우이면서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그녀에게 이 작품이 그토록 큰 의미를 차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님의 사랑은 내리사랑이고,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부모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어쩜 배우 나문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통해 진정 자신의 어머니이자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이름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이름 어머니, 어머니의 이름은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원천이자 자기 희생 그 자체였다. 그런 이유로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할 대상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존재' 처럼 되어 버린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 뱉어 놓고 생각해 보아도 마음이 씁쓸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 책은 드라마와 같은 제목의 원작소설이다. 어머니는 남들이 동경해 마지않은 의사 사모님이지만 집안일에 무심하고 권위적인 남편때문에 여자로서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거인지 알지 못한 체 살아간다. 더구나 최근에는 빚을 끌어다 개원한 병원이 의료사고로 문을 닫으면서 경제적으로도 힘겨움을 감수하면서 살아야한다. 두 자녀 만큼은 나름 훌륭하게 키워낸 것 처럼 보이지만 딸은 사랑때문에, 아들은 불투명한 미래때문에 어머니에게 이기적인 모습만 보인다. 게다가 어머니의 남동생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노름에 도박에 툭하면 어머니에게 와서 행패를 부려 돈을 뜯어간다.
하지만 어머니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치매걸린 시어머니다. 며느리한테 모질었던 시어머니들은 나이들고 기운없을 때 꼭 그 며느리한테 자신을 맡기게 될까? 현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그런경우 참 많이 봤는데 전생이 있다면 아마 참 질긴 인연이 아닐까 싶다. 세월때문에 약해지는 어머니의 체력은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편에 자식들에 시어머니의 수발까지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은 어머니가 강철 체력이라도 된다는 듯, 어머니의 힘겨운 하루 일과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가족들이 어머니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흘러버린 시간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을 때다. 지금까지 그렇게 이기적으로 굴었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180도 변한다. 이제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지금까지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다는 후회, 어쩜 평생 짊어져야 할 죄책감이 더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그제서야 가족들은 어머니를 돌아보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표현하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극적으로 투병에서 이기고 가족들과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도 같은데 작가가 전달하려던 메세지는 확실히 강했다.
책 읽으면서 오래 전 드라마의 한 장면, 한장면이 되살아나 마음이 무척 쓰리고 아팠다. 특히 어머니가 시어머니께 모진 행동을 하려했던 장면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섬뜩하고도 파격적으로 다가왔지만, 자신이 죗값을 치르더라도 남은 가족들의 짐을 덜어주려던 어머니의 마음이 너무나 처절해서 눈물이 났다. 어머니란 원래 그런 분들이 아니던가. 다만 소설의 내용상 초반에는 좀 답답하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하다가 병이 알려짐과 동시에 새사람이 된 가족들(심지어 어머니의 망나니 동생조차도 하루 아침에 달라지다니)을 보면서 역시나 드라마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자전적인 소설은 아니지만 노희경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젊은 날의 방황이 밑거름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 문득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떠올랐는데 두 작가 모두 여류작가라서 그런지 감성을 자극하는 문체와 전개가 뛰어나다. 개인적으로 섬세함에 있어서는 신경숙 작가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새로운 소설을 만나지 않는 한 당분간은 어머니와 관련된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엄마를 부탁해> 이 두권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 자식이 철들때까지만 부디, 건강하시길... ' 라고 한 작가의 말이 책 한권의 메세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하다.
밑줄 긋다
"연수는 문득 이런 상황에 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지는 건 순전히 그런 엄마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성이 이타적인 엄마가 곁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기적이 되어버린 가족들. 연수는 그런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p.128)"
"평생을 부정하는 것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온 엄마였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엄마는 자신의 죽음조차 선선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p. 229)"
"자식이 부모한테 받은 걸 다 돌려줄 수는 없어. (p.250)"
" "어머니, 어머니! 나랑 같이 죽자! 나 죽으면 어떻게 살래? 나랑 같이 죽자! 애들 고생 그만 시키고, 나랑 같이 죽자! 어머니이... " (p.274)"
" "정수야, 너... 다 잊어버려도, 엄마 얼굴도, 웃음도 다 잊어버려도... 니가 이 엄마 뱃속에서 나온 건 잊으면 안 돼." (p.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