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54974145537964.jpg)
2008년도 대한민국의 키워드는 단연코 '촛불'이다. 출범당시 높은 지지율로 기대를 모았던 MB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밀어붙이기식으로 수입소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건강과 직결되는 먹거리 만큼은 확실하게 보장받기를 원했던 국민들은 필사적으로 '국민의 뜻'을 전달할 수 밖에 없었다. 국민의 뜻...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지난 세월동안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뿌렸던가! 하지만 불도저 같은 정권에 맞서 국민들이 선택한 방법은 평화적인 촛불 집회였다.
<캔들 플라워> 이 책은 촛불 집회가 절정에 달했던 그 해 5월부터 가을까지를 배경으로 다섯 명의 소년소녀들이 집회에 참석하면서 생긴 일과 한 단계 성숙하기위한 성장통을 그리고 있다. 중심인물인 지오는 히피스타일의 엄마, 할머니, 그리고 엄마의 애인과 함께 살던 아이인데 15세가 되면 자유롭게 여행해도 좋다는 약속에 선듯 한국행을 택한, 한마디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10대 소녀다. 지오와 인터넷으로 인연을 맺게된 희영은 학습지를 만드는 회사에 근무하는 4년차 직장인으로 매일 코코돌코나기펭! 이라는 자신만의 주문을 외우며 떠날 날을 꿈꾸는 이십대다.
연우는 희영이 길에 버려진 강아지를 치료하기위해 발을 구를 때 도움을 주면서 친구가 되었고, 연우의 친구 수아는 된장녀이자 잘나가는 강남녀처럼 보이지만 폭력적인 아버지때문에 상처가 가득한 소녀다. 그리고 민기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듬직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사실을 왜곡하고 선량한 시민을 간첩인 것 처럼 몰아가는 기사를 쓴 아버지로 인해 괴로워한다. 이처럼 나이도 성별도 태어나 자란 환경도 다른 주인공들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는 순간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정치꾼들의 정치는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정치는 변화하고 있는걸. 한쪽이 변하면 다른 쪽도 언젠가는 변하게 될 거야. 우린 자연이니까. 촛불을 경험한 연둣빛 소녀소년들이 푸르른 이십 대가 되는 때가 곧 오는걸. (p.365)"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촛불을 켜게 하고,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게 했던 그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 진다. 물론 여전히 불편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맨 앞줄에서 촛불을 밝혔던 이들이 바로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동생들인 소녀소년들이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당시 언론은 386세대를 잇는, 우리 정치사에 새로운 역사를 쓴 세대라고 평하기도 했었는데 분명한 것은 그들이 형들 보다, 부모들 보다도 더 성숙했다는 점이다. 촛불은 소녀소년들에게 정치적인 시위나 비폭력을 상징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촛불은 문화이며, '시들지 않는 꽃'이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날의 따스했던 온기에 비해 이따금씩 아득한 옛일 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뿌듯함의 이면에는 언제 또 다시 그토록 뜨거울 수 있을까? 하는 서글픔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산 소고기는 잘만 팔리고 있는데 촛불 집회와 관련된 형사건은 어떻게 처리가 되고 있는지. 당시 부상을 당했던 시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교육감 선거 결과 처럼 때론 '대다수 국민들의 뜻' 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현실에서는 다르게 표현된다는 점도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정치 문제'와 연결지어 생각하려는 시도는 가급적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복잡하고 민감하고 골치아픈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건강한 소녀소년들의 성장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 특히 순수하면서도 4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지오의 독특한 정신세계는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자칫 딱딱해 질 수 있는 주제를 보완해주는 역할도 한다. 중요한 것은 독자의 마음 가짐이 어떠하든지 이 책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미 - 시인 김선우의 두 번재 소설, 촛불 집회를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이라는 의미가 퇴색하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