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의 즐거움
하성란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엄마는 왜 나만 혼내? 진짜 내 엄마 맞어?" 어릴 때 엄마한테 혼이 난 뒤면 다락방 구석에 쳐박혀서 한동안 식구들의 눈을 피하곤 했다. 분명히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섭섭함부터 셋째 딸이라는 이유로 늘 허름한 옷을 입어야 하고 낡은 가방에 학용품을 물려 써야 했던 서러움 등 그동안 쌓여왔던 억울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럴때면 달콤한 사탕의 유혹처럼 나를 낳아주신 진짜 부모님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지곤 했다.  같은 날 태어난 두 아기가 간호사의 실수로 뒤바뀐 인생을 살게 된다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진짜 부모님이 엄청난 부자라는 설정은 당연한듯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품는다는 유년의 허황된 상상... 그 땐 왜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식사의 즐거움>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자'도 '업둥이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이다. 누군가와 뒤바뀐 인생을 산다고 믿는, 어디엔가 자신을 낳아준 생물학적 친부모님이 계실거라고 철썩같이 믿는 남자다. 하지만 남자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스물 여덟의 건장한 청년이다. 때문에 남자의 믿음은 유년에 잠시 겪는 상상의 차원을 넘어 '확신'이자 '진실'로 인식되었다. 남자에게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삶의 힘겨움을 술에 의지하다 알콜중독자가 된 어머니가 있다. 그런 요인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번호를 잘못 보고 탄 버스는 남자를 낯선 동네로 데려다 주고,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사로잡힌 남자는 그곳에 자신의 친부모가 산다고 생각한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 가족과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할 것 처럼 보이는 남자...  설정이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책장을 넘겨봤자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할거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남자는 학창시절 유일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 여학생이 자살했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자신과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그늘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소설에 대한 편애가 있는 나로서도 최근들어 우울한 소설들을 연거푸 접하다 보니 그 여파가 유쾌하지 않던 차라 결과를 읽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였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초반의 기대와는 다르게 책을 덮은 후에야 비로소 뿌듯해지는 작품이 있다. '식사의 즐거움' 이 책이 바로 그렇다. 남자의 '친부모 찾기'는 엉뚱하고 무모할 뿐 아니라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한 인간의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그에게 드리워진 패배자라는 낙인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한 것은 우연이나 운명이 아니라 '남자의 행동' 이었으며, 그에 앞서 '확고한 의지' 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식사의 즐거움'은 남자가 그토록 원하던 '가족의 사랑'에 대한 반어법이자 '다가올 희망',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진다. 

 

 <식사의 즐거움> 사심을 담아 말하자면 개인적인 취향과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었다. 한국소설 특유의 세심한 묘사를 기본으로 주인공 외에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에피소드가 양념 역할을 잘 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에서 약간 일본 소설 느낌이 나기도 했는데 첫 출간이 12년 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이름 한번 다정하게 불러주지 않고 끝까지 '남자'라고 칭했던 자유로운 시점부터, 슬프지만 울 필요가 없고 아프지만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전개가 맘에 든다. 덧붙여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과 현실에서의 에피소드가 보이지 않는 짚으로 엮어놓은 굴비처럼 맛난 냄새를 풍긴다. 요즘은 할 말이 많으면 입이 아픈게 아니라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던데... 됐고,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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