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
닉 혼비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청소년 범죄나 청소년들의 성에 관한 부분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지도 꽤 되었다. 그러고보니 20여년전 내가 고등학생 일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미국이나 유럽에는 아기를 업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있고 학교내 마약 문제도 심각하다고 하셨었다. 그땐 정말이지 생각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너무나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딴나라'를 넘어 '별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문제가 서구 사회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폭력적인 미디어를 탓하기도 하고, 인터넷의 발달, 가정 불화로 인한 무관심 혹은 그 반대로 지나치게 보호받으며 자란 것을 탓하기도 한다. 사실상 인성교육을 포기하다시피한 교육이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요즘 아이들이 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빠르게 성숙하는 것만은 분명하며, 가정과 학교 양측에서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세울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어야 할 것이다.        

   

 <슬램> 이 책은 16세에 아빠가 된 소년의 이야기다. 이렇게 적고 보니 무척 문제가 많은 학생일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단지 샘의 엄마도 너무 이른 나이에 샘을 낳았다는 사실이 다른 가정과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겠지만 이혼한 아빠와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등 비교적 평범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샘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스케이트 보드에 열광하는 보통의 학생일 뿐이었다. 그런데 첫눈에 반한 여자친구와 사귀는 동안 수많은 시간들 중 단 5초간의 실수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언젠가 어떤 스케이터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스케이트가 믿기 어려울 만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라고 했다. 인생 최고의 스케이팅을 펼치며 '이렇게 끝내주게 타다니'라는 생각이 막 드는 순간,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쳐박을 수도 있는 게 스케이팅이라고. 한마디로 9분 55초 동안 멋지게 스케이트를 타는 것만으론 안 된다. 나머지 5초란 사람을 갑자기 최악의 머저리로 만들고도 남는 시간기 때문이다. 흥, 인생이란 그런 거다. (p.71)"

 

 인생이란 그런 거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불쑥불쑥 생겨나는 것이 인생인 거다. 이 철딱서니 없는 소년은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두려워한 나머지 여자 친구에게 연락을 끊고 다른 도시로 도망가서 살 생각까지 한다. 그런 상황에서 몇 배 아니 몇 십배는 더 충격에 빠져있을 여자 친구를 내팽개칠 생각을 하다니! 그 나이 때 딱 그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순간은 소년을 남자로 자라게 만들었다. 옛날 어른들 말씀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고 했는데 소년은 아빠가 되면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것이다.     

 


 "나는 몸을 구부려 아기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지난번에 잘 모를 때는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입으로 숨을 쉬었다. 아기 똥 냄새가 좋은 편이라는 걸, 어쨌든 거의 그렇다는 걸 몰랐으니까. "맞아, 기저귀 갈아 줘야겠어. " (p.279)" 

 

 이 책의 내용이 무척이나 현실감있게 와닿았던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샘과 여자 친구 모두 평범한 학생이라는 설정덕분이다. 때문에, 설마... 라는 생각으로 밀쳐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당사자 이거나 혹은 부모의 입장으로)'이라는 시각으로 읽게 되었다. 샘은 여자친구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원치 않게 아빠가 되었지만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결혼 문제와 상관없이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반의 찌질했던 모습에 비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라고 하겠다. 덧붙여 상대의 자식이 내 자식의 인생을 망쳤다고 주장하는 양가 부모들의 입장을 대하면서 어쩜 동서양을 구분할 것 없이 모든 부모의 입장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의 제목인 '슬램(Slam)'은 스케이트 용어로 '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주인공 샘은 자신의 인생에 닥친 가장 큰 위기를 -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도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었다. - 본인의 의지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자전거를 배울 때 처럼 혹은 스케이트를 탈 때 처럼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다보면 결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소년의 경우는 넘어져도 제대로 넘어진 경우였지만 최소한 엎드려 누워있지만은 않았고, 아직은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잘 해 왔으니 앞으로도 무난하게 헤쳐나갈 것이라 믿고 싶다. 

 

 주말에 인터넷 기사를 보니 미혼모가 혼자 아이를 낳은 뒤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기사를 읽었다. 잊을만하면 이런 기사가 나오니 정말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미혼모를 위한 보호기관이나 입양이라는 방법도 있을텐데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미혼모라는 낙인이 무서워서 어쩔수 없었다는 그 여인도 딱하고 그들을 그렇게까지 내몰 수 밖에 없는, 아직은 성숙되지 못한 우리 사회도 문제일 것이다. 무조건 막자고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 최선이 안된다면 늘 차선을 열어놓는 것. 그것이 바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기본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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