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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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제 친구는 절대로 거짓말 할 그런 애가 아니라니깐요! 오랜만에 삼동서가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면 일단은 '군대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간 거다. 흔히들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이야기, 축구이야기 그 중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한다.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여전히 네버앤딩 스토리이긴 하다. 재미있는 것은 직접 겪은 이야기보다 전해들은 이야기가 더 인기라고 우리집만 해도 현역인 울 신랑 보다 6방인 형부와 면제인 형부가 더 열변을 토한다. "내 친구말로는..." 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아무도 못말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현역은 절대 먼저 나서지 않는다. 대신 드물게 부연 설명이나 쐐기를 박는 말은 한다. "그거요? 다 뻥입니다!"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이 책은 속된 표현으로 '세상에서 가장 뻥을 잘 치는 남자가 떠든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다. 어릴 때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이란 제목으로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남작이라는 직책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1차적으로 혹해서 지체 높으신 남작님이 직접 들려주는 황당하면서도 기발한 모험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내용도 있었고 결국 모든 것이 뻥이구나, 라는 허탈감도 들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모험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데는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려진 것과 같이 이 책의 주인공인 뮌히하우젠 남작은 18세기 독일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수렵가이자 모험가, 군인이었던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지인들에게 과장해서 들려주었는데 그 내용이 책으로까지 출간된 것이다. 사람들은 뮌히하우젠이 허풍쟁이라는 것을, 그의 이야기가 엉터리임을 알면서도 왜 그토록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허풍도 허풍이지만 아마도 입담이 좋았던 것을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요즘으로 치면 개콘 육봉달이 "달리는 2-1번 마을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철근을 씹어먹고..." 라는 말이나 너도나도 "만주에서 개 타고 말장사 하던 시절"을 회상하고 "월남 스키부대 출신" 이라며 으스대도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또 한가지는 그의 이야기가 허풍을 넘어 판타지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주목받고 싶고 재미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뛰어 넘어 바다에서 육지로, 사냥터에서 전쟁터로, 달나라에서 지구 중심부까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들며 뻥을 쳐도 아주 예술적으로 쳤다. 더구나 오늘날 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달나라를 여행한다는 자체가 '단순한 허풍'으로만 들리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뮌히하우젠의 허풍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술이자 설화, 전설이었던 것이다.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정말 오랫만에 다시 읽었는데 한페이지씩 넘길때마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도 되살아나고 역시나 웃겼다. 어릴 땐 단순히 재미로만 읽었던 이야기인데 25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온갖 추측과 사고를 이끌어 낸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던 시간이기도 했다. 서두에 작가가 말하기를 독일의 이야기인데도 영국에서 먼저 출간된 점에 유감을 표한 부분이 있는데 뮌히하우젠에 대한 독일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내용중에 뮌히하우젠이 굉장히 진지해지는 장면이 있다.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를 꾸며서 떠들어대는 여행자와 자신의 이야기를 왜곡해서 옮기는 사람들을 비판할 때 그렇다. 그 능청스러움이란... 그 대목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두 손을 들고야 말았다. 뻥을 쳐도 진지하게, 엘레강스하게 치면 누구라도 넘어가게 된다는 사실~ ㅋ

 

 사족처럼 들리겠지만 한 가지만 덧붙여야 겠다. 혹자는 뮌히하우젠의 모험을 '걸리버 여행기'나 '돈키호테의 모험'에 비교하기도 하던데 개인적으로는 세 가지의 작품을 모두 포함해서 모험을 즐기고 신대륙을 탐험하는 주인공을 통해 확실히 독일인, 영국인, 에스파냐인의 성향을 말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부터 제국주의의 싹이 보였다고 말하면 너무 오버하는건가? 어쩜 단순히 맥주타임에 안주가 필요했을 수도 있고 웃고 떠드는 가운데 은근슬쩍 '고귀하신 남작님은 뻥쟁이' 라는 점을 들어 당시 사회를 풍자하려 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떤 이유든 이런 장르의 책이 '고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구라같은 이야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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