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도시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5
이동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적 자랐던 한옥집 마당에는 지붕보다 높게 자란 석류 나무가 있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손주들을 위해 손수 심으셨다는데, 얼핏 보면 한 그루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 그루의 나무가 자연스레 휘감긴 것으로 모양도 참 멋있었다. 그런데 한옥집을 헐고 집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계획대로라면 공사 기간동안만 잠시 다른 곳에 옮겨 심었다가 되가져와야 했으나 옮겨진 곳에서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해 죽었다는 것이다. 20여년 간이나 한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해마다 풍성한 열매로 보답했던 나무의 마지막이 너무나 쓸쓸했던 것 같아 한동안 온 가족이 허탈해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나 나무를 구분할 것도 없이 생명이 있는 존재는 나고 자란 환경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내 몸 뉘일 곳' 이라는 개념의 집이나 동네 특히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반에 반만 이해해도 새로운 곳에 정착해서 뿌리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살면서 형편이 좋아져서 더 나은 환경으로 옮겨간다면 그러한 고민조차 행복의 일부가 될 수 있겠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환경의 변화' 라는 그 자체가 고통일 수 밖에 없다.

 

 <장난감 도시> 이 책은 한국 전쟁 직후 고향을 떠나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가족의 아픔을 담고 있다. 주인공이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는 초등 4학년으로 고향에서는 면장감이라는 칭찬을 들을 만큼 나름 만족한 삶을 살았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상황때문으로 도시의 판자촌으로 이사를 오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재, 병약한 어머니, 민며느리가 된 누이 그리고 온기없는 방과 구걸을 해야할 정도의 굶주림까지...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 중 대부분이 넉넉치 않은 살림이었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이 가족에게 닥친 끝도없는 불행을 생각하면 참고 살다보면 좋은 시절이 올 것이라는 위로가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자문하게 된다. 

 

 소년에게 도시는 생명이 없는 '장난감'처럼 삭막하고 매마른 곳일 뿐이었다. 그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좌절하고 방황하고 아파하는 모습이 너무나 측은했다. 자신이 당했던 것들, 가슴속에 억눌린 것을 폭력으로 해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고 민며느리로 들어간 누이에게 철없이 반항하는 모습도 안스럽기만 했다. 특히 개한테 물리고 받은 돈으로 꾸역꾸역 허기진 배를 채우던 모습,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도 여전히 허기를 느낀다는 말은 당시 주인공이 가졌던 상실감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신기한 것은 주인공 '나'가 떠올리는 기억의 조각들이 온통 가슴 아픈 이야기 뿐인가, 하는 순간 어느새 감동적인 성장소설이 되어 있음을 동시에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단편적이지만 한곳에 모으면 훌륭한 작품이 되는 퀼트 이불처럼 말이다. 더구나 1-3부가 4년여에 걸쳐 완성된 중편의 모음이라는 사실은 따로 설명하지 않으면 알지 못할 정도로 매끄럽게 이어져 있다. 솔직히 2, 3부 없는 '장난감 도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을 뿐더러 재출간 시점에 맞춰 아버지나 누이의 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가져 보았다.   

 

 끝으로... 해방전에 태어나신 아버지가 예전 이야기를 꺼내실때마다 솔직히 그렇게 감동받거나 경청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전에는 그때의 형편에 맞춰 살았고 지금 사람들은 지금 형편에 맞춰 사는 것인데 자꾸만 못먹던 시절 이야기를 꺼내시니 괜시리 반항심이 생겼던 탓일게다. 헌데 이상하게도 내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주인공에게는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감정 이입이 된다. 아버지의 인생은 아버지의 것으로 남아야 하고, 소설 속의 주인공이 겪은 상처는 살면서 내게 닥칠 수 있는 역경을 대입하기 때문일까? 나는 왜 가까이 있는 가족의 '리얼 스토리' 보다 소설에 더 집착하는가. 아, 어떤 이유든 난 못된 딸이다. 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