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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진다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5
미야모토 테루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재미나게 살거라. 생각보다 너무나 짧은 것이 인생이란다. " 명절을 보내고 인사차 친척집을 방문하던 날, 친척 할머니의 당부 말씀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올해로 결혼 50주년을 맞이하셨다는 할머니는 날로 쇠약해지시는 할아버지의 건강을 돌보시면서도 당신들 남은 인생보다는 자식들을 더 걱정하시는 듯 보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뒤돌아보며 가장 후회되는 것이 부부가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고 좀더 즐겁게 살지 못했던 것이라고 하시는데, 어느덧 꺽여버린(?) 내 나이를 생각하니 그 어떤 지혜의 말씀보다 강하게 와닿았다.
그렇다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화려한 순간은 언제일까? 인생이 만약 한 그루의 나무라면 어린이는 새싹, 청소년기는 꽃봉오리, 꽃을 피우는 시기는 청년기, 열매를 맺는 순간은 장년기일 것이다. 사회적인 성공이 4,50대의 것이라면 '젊음'이 뿜어내는 화려함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단연코 20대의 것이다. 특히 대학생활은 성인이면서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회인이 되기위한 과도기다. 미래를 향한 꿈, 첫사랑, 도전, 열정, 낭만... 그 모든 것을 하나의 빛깔로 표현할 수 있다면 바로 '파랑'인 것이다.
<파랑이 진다> 이 책은 주인공 료헤이의 대학 4년간을 배경으로 사랑과 우정, 스포츠를 통한 도전 정신과 역경을 헤쳐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재수생이던 료헤이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성적이 되지 않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신설학교에 지원하는데, 바로 그날 미모의 여학생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다. 그리고 입학식날은 어떨결에 테니스부에 가입하게 되고 다양한 캐릭터이자 사연을 가진 친구들과 뭉쳐 테니스 대회 준비를 하고 마침내 결전을 치른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잔잔하고 서정적인듯한 서술과 스포츠의 다이나믹함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료헤이와 그의 친구들을 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소심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도 못한다. 료헤이를 좋아했던 유코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테니스 부원으로서는 다르다.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한다는 것이 제대로 느껴질 정도로 때론 우직하게, 때론 무모하게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특히, 테니스 코트를 직접 만들기까지 했던 가네코와 유전적인 병과 싸워가면서 운동을 했던 안자이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파랑이 진다> 라는 제목처럼 료헤이와 친구들의 대학생활이 끝나갈수록 파란 빛깔도 차츰 퇴색되는 느낌이 든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런 시간이지만 모두는 안다. 그 짧은 시간을 통해 우리 자신이 얼마나 많이 성숙해 졌는지. 그리고 이젠 사회에 나가 세상과 당당히 맞설 순간이 왔다는 것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파랑이란 젊음과 희망을 상징함과 동시에 우울과 신중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젊음의 파랑이 조금씩 옅어질수록 삶에 있어서는 안정을 얻는다는 의미일까? 오늘 하루 만큼 파랑을 잃은 독자로서는 그렇게라도 믿고 싶다. "야들아, 재미나게 살거래이~ " 할머니의 그 말씀이 다시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