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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바이올린
조셉 젤리네크 지음, 고인경 옮김 / 세계사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봤던 내용입니다. 영국의 어느 박물관에는 공중에 매달려 있는 의자가 있다고 해요. 장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한 남자가 자신의 의자에 앉아있던 장인을 죽인 후 사형을 당하면서 누구라도 '그 의자'에 앉은 사람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남겼다고 하지요. 많은 젊은이들이 호기심이나 앉았다가 죽기도 했고 미신이라며 큰 소리 치며 앉았던 이들도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처음 TV를 봤을 때만 해도 마법사가 등장하는 시대도 아닌데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에 저주를 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라며 믿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희생된 사람이 300여명이나 되고 공중에 매달려있는 의자까지 보여주니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투탕카멘의 저주'는 어떤가요? 유물을 발굴했던 사람들의 잇단 죽음으로 주목받았던 파라오입니다. 최근에는 그들의 죽음이 저주와는 상관없는 우연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가 숨쉬고 있는 21세기에도 미스테리한 일들은 수도없이 많다보니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악마의 바이올린> 이 책에는 파가니니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악마의 바이올린이자 저주받은 바이올린이라는 설정으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파가니니는 19세기 초, 신기에 가까운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인 작곡가이자 연주가 입니다. 사람들은 파가니니의 놀라운 연주 실력이 악마와의 거래로 얻은 것이라 수군거렸는데 그의 특이한 외모 - 날카로운 눈매와 매부리코, 비정상적으로 긴 손가락 때문에 그런 소문이 더욱 커졌다고들 합니다. 파가니니가 잘 생긴 외모였다면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을까요? 어쩌면 '악마와의 거래'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교가 넘치는 연주를 했던 까닭이겠지요.
사건은 천재 바이올린 연주가 아네 라라사발이 공연도중 살해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페르도모 경위는 음악에 대해 별 관심없이 살아온 인물이지만 아들을 위해 연주회장을 찾았다가 사건을 수사하게 됩니다. 피해자가 유명인사이다 보니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라진 바이올린이 박물관에 보관해도 좋은 만큼의 가치를 지닌 악기라는 점도 주목을 끕니다. 더구나 그 바이올린이 많은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한 파가니니의 저주받은 바이올린이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옛말에 "훌륭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사실 목수에겐 실력만큼이나 연장도 중요해요. 마찬가지로 연주가들은 악기를 통해서만 예술성을 표현할 수 있으니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에 대한 집착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초, 중반까지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것에 비해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기도 했습니다만 냉철하고 현실성있는 인물들과 전설적인 바이올린을 둘러싼, 클래식과 추리소설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신선하게 와닿았던 작품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인 <10번 교향곡>도 읽어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