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26
오스카 와일드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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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어찌 이리도 빨리 흐르는지. 올 한해도 벌써 다 지나가고 한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솔직히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정도로 초조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서른 중반에 접어들면서 부터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 허무함이랄지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 못할 수만가지 생각들이 교차된다. 거기서 나아가 가끔씩은 내 나이를 깜박할 때도 있다. 좋은 의미에서 '나이를 잊고 산다'가 아닌 의식적으로 기억에서 지워버리게 되는 것 같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이 책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청년의 이야기다. 그의 이름은 도리언 그레이, 사람들은 그의 부와 명성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사랑하고 칭송했다. 이토록 잘 생겼으니 마음도 따뜻하고 예의바르며 순수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엔 사람들이 생각하던 도리언의 모습과 실제 그의 모습이 일치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도리언은 화가 바질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스스로의 모습에 깊이 빠져버렸고 젊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해버린다.

 

 그후 18년 동안 도리언 그레이는 주름 하나도 늘지 않을 만큼 젊음을 유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도리언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그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사교계에서 손꼽히는 인사가 된다. 하지만 도리언의 화려함 뒤에는 쾌락을 쫓아 헤메는 어두운 면이 함께 있었다. 그는 젊음을 이용해서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으며 그를 흠모하는 다른 사람들까지 파멸로 이끌었다. 그가 행했던 일들은 무성한 소문으로만 떠돌다가 도리언을 비껴갔으나 초상화 속의 '그'는 점차 추악한 몰골로 변해가고 있었다.

 

 책 읽으면서 도리언 그레이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상해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책에 묘사된 것 만으로 그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어렵다면 표지 그림을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 또한 책장을 넘기기 전 한참 동안이나 마음을 빼앗겼었다. '잘생겼다' 라는 말보다는 '아름답다' 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미소년이다. 외적인 아름다움이 무가치하다고는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썩어 없어질 육체를 위해 영혼을 포기했던 도리언의 선택은 분명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그토록 원했던 젊음으로 방탕한 생활만을 일삼았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다. 어쩌면 그가 영혼을 파는 순간, 양심이나 죄책감 같은 선한 마음까지도 함께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시대에 따라서 미의 기준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은 비슷한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중심의 문화를 꽃피웠으나 '나이 듬'이 죄악시 되던 시대였다. 여인들은 흰 얼굴을 유지하기위해 중금속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으며 갑갑한 코르셋으로 몸을 감싸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훤칠한 키와 성형에 집착하는 것도 그 시대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내적인 면이 채워지지 않는 아름다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껍데기일 뿐이며, 채워지지 않은 갈증만 느끼게 할 뿐이다. 

 

 어린시절 읽었던 <행복한 왕자> 라는 동화가 생각난다. 멋진 모습을 한 왕자(동상)는 제비에게 부탁해서 자신의 몸에 붙은 장식물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사람들은 왕자의 모습이 보기 흉해지자 동상을 녹여버리는데 심장은 녹지 않고 제비와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이 동화를 쓴 작가도 오스카 와일드다. 같은 작가가 쓴 책이지만 완전히 다른 형식, 다른 내용이다. 하지만 행복한 왕자와 도리언 그레이 두 사람 중 과연 누구의 삶이 가치있으며, 누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했을까?, 라는 것만 떠올린다면 작가가 의도한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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