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파리에서 편지가 왔다
박재은 지음 / 낭만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라는 노래 가사가 무색한 시절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편지를 참 많이도 썼는데... 특히 국군 아저씨께 보냈던 위문 편지나 친한 친구들 끼리도 편지를 주고 받곤 했고, 방학이면 담임선생님과 평소 사모했던 총각선생님께도 편지를 보내곤 했었다. 친구들이랑 팬시점에 몰려가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면서 편지지를 고르고 꾹꾹 힘주어가며 눌러 쓴 글씨, 그 아래쪽에는 하트 몇 개씩 기본으로 날려주고 그것도 모자라 두꺼운 책 사이에 넣어 말린 코스모스를 고이 끼워넣어 편지와 함께 동봉했었던 추억을 떠올리니 새삼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다.

 

 <어느날, 파리에서 편지가 왔다> 이 책은 저자가 파리의 곳곳을 둘러보면서 편지를 적어 보내 듯 써내려간 글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파리는 낭만의 도시이자 가고픈 여행지 0순위인 도시이지만 저자의 경우는 유학시절 오직 외로웠던 기억 뿐 낭만을 느낄 결흘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에 머물러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마음 속에 여유로움이 없고 즐거움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런 생활 속에서 한국의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엽서)는 보내는 이와 받는 이 모두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이제 다시금 되돌아 본 파리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그 시절 사랑하는 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독자들을 향해 편지를 띄우게 된 것이다. 파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상젤리제이고 상젤리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개선문이다. 개선문은 표현 그대로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구조물이며 어찌보면 파리의 상징 에펠탑 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선문 아래에 1차 대전 때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시신이 묻혀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승리'란 이름 없이 묻힌 자들로 인해 얻어진 것임을, 그들의 공을 한시도 잊지 않기 위한 프랑스인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파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가지 명소는 루브르 박물관이다. 그 곳에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귀한 유물들, 특히 다른 문화권에서 약탈해 온 유물들이 많다. (프랑스의 부당한 행위와 정치적인 의견들은 일단 덮어두고 이야기하자면) 파리가 겪었던 몇 차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감상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작품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에 공감한다. '세계 미술관 기행' 이라는 시리즈 중 '내셔널 갤러리'를 소개한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문화 유산들을 보호하기위한 조치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서 영국인들의 사고방식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당신의 요리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균형'이라고 주저 없이 답해주던 쉐프는 요리도 균형이 다 맞아들 때 맛도 모양도 좋듯이, 사람사는 일도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이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략) 내 인생의 균형이 맞아 내 삶이 즐거워야 남도 기쁘게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자신을 존중하는 자세, 그것이 바로 프랑스 요리마다 숨어 있는 재료다. (p.177)"

 

 직업이 요리사인 만큼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한다. 책의 뒷부분에는 특별히 파리에서 맛보아야 할 요리와 음식점을 따로 소개하고 있어 파리 여행을 계획한 이들에게 유용할 것 같다. 동물을 키워도 주인이 자신을 사랑해주는지 알아차린다고 하고 화초를 키울 때 조차 긍정적인 마음으로 키운 화초는 잎에서 윤기가 난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행복한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 더 맛날 것이라는 생각은 이상할 것이 없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엄마가 만들어준 요리가 젤 맛나다고 느끼고 '엄마는 요리사' 라면서 치켜세우는 것도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엄마의 마음, '숨어 있는 재료' 맛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한 가지로 성공하기도 힘든 세상인지라 다재다능한 사람을 만나면 부러움과 질투가 동시에 솟구친다. 요리도 하고 책도 쓰고, 더구나 요리책도 아닌 에세이라니 참 멋진 인생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사진이 어찌나 많던지 파리에 대한 화보집 같기도 하고 금방 읽겠구나 싶었는데 의외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내용이다. 파리에 대한 여행서는 더이상 색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될 만큼 많은 책이 출간되어 있지만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각도로 사진을 찍듯이 써내려간 글이어서 그런지 오늘 만난 파리도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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