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오래 전, 책이 귀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람이 곧 책' 이었던 때가 있었다. 마을의 가장 연장자이신 어른들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삶의 지혜와 지식을 가진 백과사전이나 마찬가지 였다. 귀한 가르침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후손들에게 전해졌으며, 종이가 생기면서 책이란 개념이 생기게 된다. 초기의 책은 귀족들을 비롯하여 선택받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으나 출판 기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일반인들도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한다는 자체가 행복에 겨운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에서 소개된 책은 '사람 책'이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저자가 런던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을 했는데, '리빙 라이브러리' 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을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는 책 목록 대신 사람에 관한 목록이 있다. 예를들면 싱글맘, 레즈비언, 트렌스젠더, 정신분열증 환자, 완전 채식주의자 등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사회적 소수자들을 비롯해서 장학사나 여자소방관, 사립학교 졸업생 등 평범함을 살짝 벗어난 책들도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책 목록(사람 목록)중에서 대여하고 싶은 책을 고르고 30여분간 대화할 수 있다. 책 목록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댓가도 받지 않으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자원한 이들이다. 책이 된 사람과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 양자가 바라는 것은 같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함부로 평가하거나 그들에 대해 막연하게 가져왔던 편견을 극복해보자는 취지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생각은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라도 마찬가지" 라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편견어린 시선과 힘겨움은 유럽인이라고 해서 덜하지는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한 사람이 겪은 인생이 비슷한 위치에 처한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만이 가지는 공통적인 부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폭은 확실히 넓어 지는 것 같다. 또 한가지는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라도 마찬가지 라고 했으나, 우리 보다는 기본적으로 복지가 잘 되어있다든지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점은 본받을만 하다.

 

 23살이라는 나이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크리스틴을 보면서 그녀의 씩씩한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가 경제적인 능력을 키우고 한 생명에 대해 책임질 자세가 되어있을 때 부모가 되는 것이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태어날 때는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완전한 여자로 죽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트렌스젠더의 고백도 인상적이었고, 나이 60이 넘어 이혼을 하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찾은 할머니의 이야기, 남들이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가정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가족들간의 불화와 유전적인 원인으로 인해 정신분열증을 겪어야 했던 배우지망생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저마다 생긴 모양 만큼이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가끔씩 인생이 무상하다고 느낀다든지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만날때면 대부분이 그렇더라. 누군가가 그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껍질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더라는 사실이다. 어찌보면 살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스스로를 편견 속에 가두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편견의 대상과 마주하려는 시도를 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열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 '리빙 라이브러리'야 말로 '사람의 가치'를 일깨워준 도서관이라고 하겠다. 덧붙여 우리 사회에서도 한번쯤 시도해 보았으면 하고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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