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주제 사라마구가 "좀처럼 만나기 힘든 위대한 작품" 이라고 격찬했다는 내용때문에 그 이유 하나만으로 관심이 갔던 작품이다. 책이 출간될때마다 누군가 격려사를 써주고 홍보 문구로 이용되기도 한다지만 사라마구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일단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라는 점과 그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어떤 계기가 되었든 이렇게 또 한사람의 의식있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뜬다. 책의 첫장면은 아내를 잃어버린, 아니 정확한 표현으로는 아내를 되찾은 남자 아길라르의 절규로 시작한다. 겨우 나흘간의 출장을 다녀왔을 뿐인데 아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를 찾은 곳은 호텔이었다. 그것도 낯선 사내가 문을 열어주면서 아내인 아구스티나를 떠넘기고는 사라져 버린다. 남편이 출장간 사이 아내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길라르는 정신이 나가버린 아내를 붙들고 자신마저 광기에 전염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아내의 광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길라르가 아구스티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아길라르를 사로잡았고 그것 보다 사랑스러운 아구스티나일 때나 광기에 사로잡힌 아쿠스티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길라르는 사랑은 말뿐인 사랑이 아니었다. 아구스티나에게 더할 수 없을 만큼 헌신적이었고 그녀를 돌보기 위해, 그녀의 광기를 잠재우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소설이 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과 광녀의 사랑이야기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미다스라는 의문의 남자와 아구스티나의 이모 등 주변인물을 통해 그녀의 어린시절과 집안의 이야기를 끄집어 냄으로써 한 여인의 광기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집단적인 이기심과 이중적인 면들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쳐가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아구스티나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배신을 감추기위해 연극을 하는 장면에서는 어찌나 오싹하던지. 남편이 다른 여자를 품는 순간 보다 그 사실이 발각될 때 모든 것이 끝장난다는 것.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남편과 가정과 명예와 부를 잃지 않기 위해 연극하는 아내 그리고 맞장구치는 가족들의 모습이 소름끼치면서도 슬펐다. 또한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정치, 사회 문제를 적절하게 배치시킴으로 광기라는 것이 개인과 가족의 문제를 벗어나 사회적으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내비치고 있다. 솔직히 초반에는 읽기에 몰입하기가 좀 힘들다. 우선은 불친절한 편집이라고 해야하나. 숨쉴틈 없이 이어지는 문장에다 문장부호 사용을 극도로 아낀 글이어서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내용 파악이 어렵다. 더구나 1인칭에서 3인칭으로, 1인칭의 대상 조차도 수시로 바뀌어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또한 사라마구의 작품이나 소설 속 주인공인 블리문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하는데 작가가 사라마구의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고민하면서 질투심과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던 아길라르는 아내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녀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잠시 제정신이 돌아온 아내가 쓴 쪽지를 읽으며 다시 행복에 겨워한다. 바보같지만 순수한 아길라르의 사랑처럼 모든 것이 그렇게 단순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요한 것은 아구스티나의 광기 보다 미친 척하고, 미친 것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사실이다. 주제도 내용도 묵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고는 못하겠지만 사라마구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 관심을 가져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