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앞에서 활약하는 주연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배경을 이루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주연이 아님을 부끄러워 하는 대신, 이 '배경'의 위력을 항상 생각하며 ' 좋은 배경'이 되겠다는 뜻으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씨를 뿌리며 사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기로 했다. 태끌인 나에게 태산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71쪽
그래도 가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거나 밥순이 노릇이 지겨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부엌일이 영재 교육의 일환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우리 아이들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식탁에서 배웠다"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 성적은 그저 그래도 영재임에 틀림없다. 학교라는 거대한 사회에 적응하면서도 그 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적성이 비슷한 아빠를 따라 도약하는 아들, 취향이 다른 부모 밑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지켜내는 딸, 자긍심 지수를 학교 점수와 동일시하지 않는 현명함, 이런 점들이 모두 우리 아이들이 영재라는 증거다. -80-81쪽
인류의 경제가 항상 상승 곡선을 탈 수는 없다. 경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나타나는 약육강식의 패거리 문화를 막는 유일한 길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개인이 자신의 양심과 판단 능력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현대의 독일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이라도 법에 어긋나면 복종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 이것은 나중에 심판을 받을 적에 상부의 명령이었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178쪽
우리는 이제 다른 민족과 섞여 사는 일이 불가피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문화를 가진 외국인들이 들어와 섞인다고 고유문화가 파괴되는 건 결코 아니다. 포용력을 갖고 서로를 맞아들인다면 여러 문화의 평화로운 공존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실 성공한 다문화 현상의 수혜자는 바로 자국민들이다. -229쪽
상생 관계에 있는 친구를 경쟁상대로 보게 만드는 교육제도는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나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쓰러져서는 안 되는 옆의 동지를, 내가 밟고 지나가야 하는 적으로 여기도록 하는 교육제도 아래서 과연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248쪽
사람을 쓸데없이 초조하게 만들어 창조적인 사고를 배워야 할 귀중한 시점을 놓치게 만드는 등수 경쟁은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 '분할하라, 그리고 지배하라(divide et impera).' 이것은 기원전부터 서구 사회에 전래하는 널리 알려진 병법이다. 적을 따로따로 경쟁시켜 자기네들끼리 힘을 빼게 만든 후에 효율적으로 잡아먹으란 뜻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끼리 자진해서 경쟁이라니?-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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