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책 소개를 읽으면서도, 막상 책을 받아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면서도 신기하고 어리둥절했던 소설이다. <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 이후 이정명님의 신작이 나온다면 당연히 팩션일줄 알았는데 너무나 파격적인 변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락그룹 백두산의 보컬 유현상씨가 트로트 음반을 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라면 생뚱맞으려나. ^^;;  선입견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책 읽는 내내 처음부터 한글로 씌여졌다는 생각보다는 자꾸만 번역체의 느낌이 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하여간 책을 덮는 순간까지 적응이 안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책의 배경은 뉴욕을 연상시키는 뉴아일랜드라는 가상의 도시다. 매코이는 직감이 뛰어난 유능한 형사이지만 오래전 연쇄살인범을 뒤쫓다가 머리에 총을 맞은 후 3년 가까이 식물인간으로 지냈던 아픔이 있다. 그 후 일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켜 정직과 복직을 반복하는 문제형사로 찍힌 상태다. 최근 도시에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수사팀에 합류하게 되는데, 매코이는 과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망쳐놓았던 살인마가 다시 돌아왔다고 믿고 수사를 진행한다.
 
 안개와 함께 나타나는 범인, 웃고 있는 시체들의 비밀, 베테랑이면서 통제불능인 형사의 예리한 직감 그리고 팀원들의 활약상이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기본적으로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형태로 범인과의 쫓고 쫓기는 심리전이 볼만하다. 특이한 점은 희생자들이 과거에 경험했던 심각한 정신적 외상으로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과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또다른 죽음이 이어진다는 것을 치밀하게 계산한 살인이었다는 것이다. 사악하게도 범인은 희생자들을 고통으로 부터 자유롭게 해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식에 관한 것이다. 무엇이든 믿고 싶은대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인데 가령 특정 사실을 거부하거나 혹은 믿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할 때, 우리 의식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원치 않는 것은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치명적인 트라우마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생을 살면서 겪게되는 많은 일들이 동전의 양면처럼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선과 악의 경계도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를 즐겨읽는 편이다. 작가가 어떻게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나마 듣고 싶은 이유에서다. 물론 작가는 작품으로만 자신을 표현할 뿐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이정명 작가의 이번 작품이야말로 구상이나 집필과정이 너무나 궁금했는데 그 점이 아쉽다. 어쨌거나 이번 작품은 한국작가가 쓴 이국적인 추리소설이라는 점부터 신선했고 챕터마다 묘하게 분위기를 이끌어주는 인용문과 사건을 풀어가는 키워드, 마지막 반전까지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작은 팩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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