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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
조병국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누군가 내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말하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아이가 태어났던 날'을 꼽을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자녀를 둔 엄마라면 대부분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다양한 대답이 나오지 않아 질문하는 사람이 좀 심심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경이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아이가 주는 기쁨에 대해, 엄마로서 누리는 행복에 대해서는 일일이 말하지 않으련다. 가끔씩 잠든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면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태어나 준 것 그 자체만으로 한없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는 사실만 말해두고 싶다.
그런데 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러운 아이를, 배 아파 낳은 자식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긴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방송을 통해 본 적이 있는데 함부로 방치된 아가들의 경우 저체온증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한다. 병원으로 옮겨지더라도 신체적 손상 특히 뇌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제발 기관을 통해서 아기를 맡기거나, 빨리 발견될 수 있는 곳에 두라고 했던 내용까지 방송되었었다. 특히 최근에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신생아를 유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하니 너무나 마음 아프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저자는 작년 10월 75세의 나이로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신 분인데 지난 50여년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겪었던 사연들을 풀어놓으셨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도 세 끼 밥을 배불리 먹지 못했을 정도인데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의 비참함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제목을 통해서, 책소개를 통해서 대략의 내용을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가슴아픈 내용일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할머니 의사샘이 회상하는 과거의 우리 현실은 그랬다. 하루에도 몇건씩 아가들의 사망진단서에 서명해야 했고, 먹일 분유도 부족하고 기저귀는 턱없이 부족해 발진이 없는 아이들이 드물었을 정도란다. 자원봉사자들은 도시락까지 싸들고 다니면서 무보수로 봉사했지만 일손은 턱없이 모자라고... 그들이 바랄 수 있는 희망은 좋은 양부모를 만나 입양되는 것 뿐이었다. 국내 입양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자 해외입양 위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지만 한때는 해외입양에 대한 편견때문에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 당시 상황을 떠올릴 때 해외로 입양되어 밝게 크는 아이들 특히 장애아들의 모습을 통해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이에게 일어난 기적같은 일과 비밀입양에 얽힌 사연, 입양아들의 파행, 정부의 지원과 대책 등 입양과 관련된 사연 및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장을 펼쳐 처음 몇 장만 읽어도 금새 눈물이 쏟아진다. 내 아이를 안아주고 볼을 비비는 이 순간에도 부모님의 따뜻한 손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가슴이 먹먹하다'는 표현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준 책이다. 평생을 바쳐 아이들을 돌보신 할머니 의사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