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돌의 도시 - 생각이 금지된 구역
마누엘 F. 라모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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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기를 상상해 본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십수년 뒤에 49세가 되는 내 모습도 예측이 안되는데 49세기라니...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지하게 생각이 많거나 아니면 멍때리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 돌이켜보니 아주 어릴 때는 머나 먼 미래에 대해 가끔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 ET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미래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블랙홀로 빠져들어가 다시 현재로 온다는 그런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어느 순간 코앞의 일만 걱정하는데 급급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ET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당시 어떤 사람들은 ET의 외모가 미래인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미래에는 기계화로 인해 인간들이 몸을 움직일 일이 거의 없어지고, 근육같은 기관들이 퇴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키는 크지 않고, 팔과 다리는 마르고, 머리 크기는 그대로인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면 기형적인 모습이 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오히려 49세기가 되면 생각이 없어진다고 한다. 전 우주가 하나로 통합되고 사회 시스템이 완벽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범죄에서 사랑까지 고민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미래인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단조로움 그 자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없는 단조로운 삶은 인간을 더욱 미치게 만들기 마련이다. 주인공 카르멜로 프리사스가 내리막길만 보면 내달리게 되는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날도 내리막길이 눈 앞에 펼쳐졌을 뿐이고, 평소처럼 냅다 달렸을 뿐이다. 그런데 자기 앞을 달리는 한 남자를 발견하는 순간 경쟁심리가 발동하게 되었고 격렬한 몸싸움 끝에 두 사람 다 자동차에 치이고 만다. 알고보니 상대는 대통령의 가방을 훔친 도둑이었고 카르멜로는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된다. 언론은 앞다투어 카르멜로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고, 사람들도 영웅 카르멜로에게 열광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세계의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자들의 음모에 휘말린 카르멜로는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미스테리, 추리소설의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너무 정신이 없고 산만하다. 이야기하다가 자꾸만 삼천포로 빠지는 수다쟁이와 함께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거기다 주인공만 보면 좋아라하는 여자들도 이해가 안되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친구가 자기를 납치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린다는 식의 허무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러고보니 주인공이 차에 치이고 붕대를 감고 깁스를 한다는 표현부터 49세기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수세기 동안 인류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던가. 그 때 쯤이면 순간이동 기계도 나와주어야 하고, 치료 캡슐정도는 언급해줘야 되는거 아닌가 말이다. 49세기라는 설정은 파격적이었는데 상상력을 좀더 발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니까 블랙코미디, 라고 말하면 할말없지만 애초에 사라마구의 도시 시리즈를 연상하게 만든 제목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이거 아시는지?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둥근 돌'에 불과하다는 것을. (p.226)"

 
둥글다는 것은 모호하다. 성격이 둥글다는 말은 두루 무난하다는 뜻이겠지만, 뭔가 분명하지 않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확실한 듯 하면서도 예측불가인 인간들처럼 이 세상은 그렇게 불확실함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둥글다는 것은 하나의 면위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고 다시 되풀이 된다는 의미도 된다. 오늘날이나 49세기나 물질적인 것은 변화할지 몰라도 인간의 내면 탐욕, 거짓, 욕망, 사랑, 희망... 이런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감정들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인간만이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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