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이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어른이 되어서 돈 많~이~ 벌게 되면 멋진 전원주택 지어서 함께 모여 살자~!!" 인생에서 '친구'라는 존재의 우선순위가 최고로 높아지는 시기가 있다. 눈 뜨면 만나야 되고, 하루에 한 끼 이상은 꼭 함께 먹어야하고,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도 대화가 끊이질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친구들과 했던 철없는 약속이 문득 생각난다. 어른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만나든지 우리의 우정은 변함이 없을 거라고. 결혼 후에도 한동네에 옹기종기 함께 모여 살자던 약속. 그땐 그랬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늘푸른 소나무처럼' 변치 않을 우리의 우정만이 소중했으니까. 

윈드 시프트를 찾아 떠나는 네 명의 주인공이 바라는 것도 어린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그들만의 공간을 구입하는 것이다. 사회적 성공으로 누리는 부와 명예는 그들에게서 달콤한 휴식을 빼앗아 가버렸다. 주말여행을 떠나면서도 휴대전화에 얽메인 그들을 통해 전형적인 도시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계약 성사에만 몰두한 부동산 중계인의 무리한 진행은 어이없는 실수를 부르고 인적없는 숲에서 길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 

"처음에는 길을 잃고, 그 다음에는 우리에게 팔려고 했던 집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하더니, 이젠 우리를 죽일 뻔했잖아! p.71"

숲에서 길을 잃었다. 차는 고장이고, 휴대폰은 먹통인 곳이다. 몸은 지치고 발은 부르트고, 배고프고... 거기다 비까지 온다. 최악이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환영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도와줄 사람을 만났다. 끼니를 제공받고 몸 뉘일 공간도 구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무슨 원시부족도 아니고 문명과 교류하지 않으면서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란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곳이 바로 윈드 시프트라는 사실. 새 주인이 될 사람들과 불법 거주자들, 부동산 중계인의 불편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가끔씩 원시부족에대한 다큐멘터리를 볼때마다 그들의 삶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덜 문명화 된 것에 대해, 무지에 대해, 비위생적이고 미신을 숭배하는 것 등에 대해서 마치 다른 종족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 만큼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 보았던 것처럼 우리의 생활을 보여준다고 가정했을 때, 무조건적으로 도시인의 삶을 동경할 것이라는 생각은 성급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살 권리가 있듯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지켜봐주고 인정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양측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이다. 재미있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한데 '도시 얼뜨기들'과 '문명을 등진 이기주의자들'이 서로를 비난하던 분위기에서 오히려 네 친구의 우정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한 없이 순수했던 감정들이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것에 대한 씁쓸함이랄까 약간은 허탈하기도 했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돈이나 이성관계, 사업파트너 등과 같이 현실적인 문제들과 얽히면 좋지 않은 결말을 가져온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친한 사람일수록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선을 그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인생은 얼굴과 같은 거예요. 누구나 다른 얼굴을 가지고 싶어 하죠. 적어도 가끔은요. 하지만 당신에게 주어진 얼굴은 하나뿐이에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요."   

" 그렇지 않다는 건 당신도 알고 있소. 당신 머릿속에 호기심과 아이디어가 충분하다면, 자기가 원하는 얼굴을 가질 수 있어요. (중략) 인생은 자기가 상상하는 것이오. 자기가 원하는 것이고. 자기 꿈꾸는 것이오. 누군가가 실망할까 비판할까 조롱할까 하는 두려움 없이 그것을 발견하고 추구하려는 에너지가 필요할 뿐이오. (p.387-389)"
 

 그러고보니 인생이란 얼마나 변화무쌍하며 예측불허인지. 전원주택을 구입하기위한 단순한 주말여행이 삶을 뒤바꿀 만큼의 변화를 가져왔으니 말이다. 만약 모든 과정이 무난하게 진행되어 계약이 성사되었다면 더 행복했을까? 가식으로 만들어진 가면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라고 적으며 이 부분에서 잠시 멈칫하게 된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느냐며 스스로를 닥달했던 사람이 누구더라. 허허~ 
 
시원하게 뻗은 도로가 인상적인 표지다. 구도가 특이해서 Wind Shift로 향하는 차 안에 타고 있는 것 같은,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건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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