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 도둑 - 김주영 상상우화집
김주영 지음, 박상훈 그림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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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도둑'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꽃들로 가득한 이쁜 표지도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문득 미하엘 엔데의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작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무한 상상력이 만들어 낸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는 좋았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의미 심장한 메세지를 제 것으로 만들기에는 벅찼던 기억이 납니다. 우화집이라고 해서 '이솝우화'같은 내용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그 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잠시 고민하는 사이 김주영 작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낯익은 이름, <똥친 막대기>의 작가였습니다. 백양나무의 곁가지에서 떨어져나와 회초리도 되었다가 똥친 막대기도 되었다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희망'을 부여잡고 마침내 뿌리를 내리게 되는 사랑스런 내용이었습니다. 아하~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새 우화집 속으로 빠져듭니다.

<서울에서 파리까지 기차로 가기>에서는 열차를 타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소년을 통해 '희망찬 미래'를 보여줍니다. <외로운 여우>에서는 간절한 기다림 속에 만난 같은 종족의 여우가 '볼품없는 늙은 여우(자신)' 임을 깨닫게 되고, <자유의 뗏목을 타고>에서는 자유를 위해 뗏목을 타고 여행을 떠난 남자가 1년 넘게 강물 위에서 견딘 자신을 영웅으로 대해주는 군중들을 의식함으로써  다시는 뭍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상황을 이야기 합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달은, 사냥개에게 목줄을 매어둔 것처럼 언제나 그 하늘 그 자리에 있겠거니 하고 방심했던 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세상에,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쌈해가는 해괴한 도둑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인들 했겠습니까. <달나라 도둑> p.228"

<달나라 도둑>에서는 언제나 그자리에 있을줄만 알았던 달을 도둑맞게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만약 달이 아니라 시간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돈은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 시시각각 사라져 버리는 시간은 아까운 줄 모릅니다. 어느순간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지고 나면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요. <늪가의 집>에서는 버리고 떠나 온 '그 집'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그리워 하게 되는 순간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인데요 '달나라 도둑'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기억에 남는 두 명의 어린이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네요. 훔친 돈으로 사탕을 사긴 했는데 사탕이 너무 많아서... 남은 것을 가져 갈수도 없고, 아이는 울면서 사탕을 모두 먹어야 했지요. 어머니는 아이의 입에서 단내가 나자 신열이 나는 줄 알고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줍니다. 그리고 똥친 막대기로 회초리를 맞고 담벼락에서 주저 앉아 우는 아이도 등장합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두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데 독자는 웃음이 납니다. 

피카소와 장욱진 화백, 거기다 김주영 작가님까지 이 분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린 아이'라는 키워드 입니다. 작품에 깊이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예술에 대한 열정이 깊어질수록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닮고자 했던 분들입니다. 특히 피카소의 경우 "나는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위해 평생을 바쳤다." 라는 말로 유명하지요. 장욱진 화백님의 작품중에는 우리 아이도 저 정도는 그리겠다 싶은 작품이 간혹 있어요. 김주영 작가님은 이번 우화집을 상처투성이 소년 김주영에게 바친다고 하셨네요. 

  
대뷔 초부터 선이 굵은 대하소설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노년에 새로이 시도하신 것이 <똥친 막대기>와 <상상우화집>같은 작품이니, 마치 모든 것을 초월하신 경지에 오른 것 같네요. 딘가 아팠고 늘 꼴찌였던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구요. 그래서인지 각각의 우화에서는 상실과 고독이 묻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입니다. 당신도 보이나요? 유난히 다리가 긴 도둑이 달을 조금씩 당기고 있다는 것을... 

"그 열 살 전후의 시골 생활에서 그가 한 일이라곤 진흙탕 위에서 뒹굴며 놀았던 것밖에는 정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흔 살을 바로 코앞에 둔 그에게 이처럼 무사하고,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바로 열두 살 시절의 그 고향 마을이었습니다. <가장 그리운 것은...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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