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전윤호 지음, 부지영 원작 / 함께읽는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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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다는 것은 소리를 내는 일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소리를 낸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소리를 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내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으니 기억해달라고 소리 지른다. 지금 잊히면 영원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p.9 "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한시도 잊어본적이 없다는 말과 같다. 누군가가 너무나도 증오스럽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해주고 나를 만나러 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과 같다. 만나서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리든 서로를 할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 기억속에서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그 사람,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랬던 그 사람이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상처가 되는 것은 없다.      

명은을 외적으로 강하게 만들었던 것은 흉터때문이었다.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과 그러면서도 그리움을 떨치지 못한 자신과의 갈등, 친구들에게 사생아라도 놀림받으며 입은 상처, 명은과는 아버지가 다른 언니 명주가 결혼도 하지 않고 덜컥 승아를 낳아 키우기로 한 것도 괴로운데 어느날 불쑥 나타나서는 이모라 불러달라며 동거를 하게 된 현아라는 여인도 이유없이 싫었다. 명은이 악착같이 공부를 하면서 성공을 꿈꿨던 것은 고향을 떠나 가족에게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컸던 것이다.

명은을 다시 고향 제주도로 불러들인 것은 어머니였다. 그녀가 떠나온 고향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명은은 단지 떠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엄마 소식이 궁금하진 않아도 나에 대해선 궁금해 해야 하는 거 아냐? 난 안 달라지지만 그 인간은 달라지게 해 줄 거야. p.53" 명은은 소리를 내기로 한 것이다. 다시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저버리고 자신을 버린 그 아버지를 찾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는 명주에게 동행해 줄 것을 요구한다.

명주에게 명은은 어려우면서도 서먹한 사이랄까 동생이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명주가 아무리 자유분방하고 털털한 성격이라지만 깊은 상처로 껍질을 만들어 그 속에 숨어버린 명은과 소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명주는 명은의 아버지를 찾기위해 꼭 동행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어쩜 명은은 자신도 모르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는 명주를 질투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여행 초반 사사건건 부딪히는 가운데 두 자매 사이의 어색함은 더해지기만 한다. 

명주와 명은이 자매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이 이렇게 낯설지는 않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서른이 넘은 현재의 시점에서 둘은 너무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인 위치나 경제력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자매가 아니라면 둘이 함께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가족이란 서로 미워하고 불평하면서도 힘이 들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이 아닌가. 명주와 명은은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마침내 그 시기를 맞이한 것 뿐이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너무 일찍 와버린 사랑 혹은 너무 늦게 만난 사랑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 쉽다. '타이밍'은 결코 남녀간의 사랑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성공이나 돈을 버는데는 물론이고 사소하게는 쇼핑을 할때나 여행을 하는데도 필요하다. 그리고 진실을 말할때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그 시기를 놓치면 얼마나 오래 시간이 걸릴지 알수가 없다. 어쩜 영원히 덮어 둘 수 밖에 없을지도...  충격적인 반전이 있다기에 나름 기대하면서 추측도 해가면서 읽었다. 생각과는 많이 다른 방향이어서 놀랐지만 "우리는, 좀 더 많은 것을 껴안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p.169" 라는 말을 생각하며 생소한 가족의 모습을 이해하려 애써 본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먼저 소설로 출간되어 영화화 된 작품은 많이 들어봤지만 영화가 개봉하면서 소설로 나온 경우는 드물지 않나 싶다. 영화 자체가 자매이야기다 보니 여성층을 고려한 영향인지 표지와 삽화에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 든다. 영상으로 그려낸 부분과 글로 표현되는 것의 차이일수도 있겠지만 섬세한 묘사보다는 장면 위주로, 목차에 scene 넘버가 붙어 시나리오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공효진, 신민아 두 여배우의 연기력이 무척 기대되는, 흥행과는 별도로 작품성만큼은 인정되는 영화일거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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