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쾌인쾌사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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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해 어떤 이는 시간과 돈, 집중력을 요구하는 취미의 한 종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있어 독서란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마음의 위로와 힘을 얻는 시간이라고 늘 주장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거의 한달만에 책 한 권을 읽었다. 평소 한 주에 2권, 최소한 1권 이상은 읽어내던 속도에 비한다면 그동안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우선은 지난달에 아이가 초등 입학을 하면서 직장맘으로서 학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절실히 깨달으며 몸살을 한 번 앓았고, 사무실에서도 실사를 비롯해서 보름전까지 일주일 가량 정기감사를 받으면서 또 한번 몸살을 앓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이 되면 멍~ 해지기만 하고, 도무지 활자의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다가 급기야 책을 덮고 마는 상태가 반복이 되었다.

깃털 처럼 가벼운 것, 혹은 그보다 더 가벼운 책은 없을까? 내용을 파악하려 플롯을 이해하려 애쓸 필요도 없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서 웃을 수 있는 책,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집어든 것이 바로 <조선사 쾌인쾌사> 이다. '엽기시리즈'를 몇 권 만나본터라 추수밭 책이라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고, 저자인 이수광님도 낯익은 분이어서 여러모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푸시킨의 시를 인용한 서문에서부터 범상치 않음이 느껴진다. IMF보다 더 어렵다는 경제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위해 글을 썼다는 취지가 약간은 생뚱맞으면서도 공감이 간다. 부분적으로는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중종때 좌의정을 지낸  신용개는 술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집에서 키우던 큰 국화 분 여덟개를 앞에 두고 대작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로 임금께 사직을 청하였을 때도 중중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술을 하사하면서 만류하였을 정도라고 한다. 이항복은 친구에게 말을 빌려 동대문 밖에 다녀오겠가 하고는 한 달 동안이나 금강산을 다녀오고는 역시나 '금강산도 동대문 밖'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엄격한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인지라 내용중에는 여성들의 입장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부분도 눈에 많이 띈다. 가정은 나몰라라 하고 평생을 유랑했던 이가 있는가 하면, 해산하려는 아내를 버려두고 친구따라 금강산 유람을 떠나버린 선비, 집에 부리던 여종을 탐하는 양반들, 여인들에게는 정숙함을 강요하면서도 자신들은 기생집을 수없이 드나들거나 심지어 마음에 드는 기생에게는 수절을 요구하는 모습이 너무나 위선적이다. 유쾌해야 함에도 왠지 서글펐던 기억이... 때문에 영의정 남편의 수염을 뽑아버리고도 당당했던 여장부 송씨의 이야기와 선비를 곤경에 처하게 만든 기생들의 이야기에서 더욱 크게 웃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쾌快는 즐겁고, 시원하고,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어둡고 우울한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지게 하며, 어려운 경제 여건에 굴하지 않고 거침없이 뚫고 나가게 하는 것이다. (p.5)"

 쾌인, 쾌사, 쾌시, 쾌담 각장에서 '쾌'라는 단어가 주는 유쾌한 느낌이 고루 뿜어져나와 시종일관 밝은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쾌시, 쾌담 부분에 있어서는 은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면서 노골적인 춘화까지 등장해 순간 당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음란서생'이라는 영화에서처럼 아무리 조선시대라 하여도 남녀가 만나 전기가 통하고 서로를 흠모하는 마음이야 같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개인적으로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이들이나 위선적인 양반들을 조롱했던 서민들의 이야기가 추가되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책을 읽고 글을 남기는 것이 요즘처럼 힘든 때도 없다. 이 책을 통해 분위기를 전환하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음을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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