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TV프로중에 우리말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상적으로 자주 쓰지 않는 신기한(?) 우리말에 대한 호기심과 퇴근후 저녁 식사 시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즐겨보곤 하는데 한번은 20대 초반의 여성이 '달인'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퀴즈쇼에서 우승한다는 것을 '복권'에 비교한다면 섭섭할지도 모른다. 물론 거금 획득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할지 모르나 한쪽은 분명 '사행성'이고, 다른 한쪽은 엄연한 '실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력만으로 우승이 되느냐. 결국은 98%의 노력에 나머지 2%는 '운'인데... 출연자가 예상 문제로 뽑아 공부했던 문제가 기적처럼 연속적으로 나와주고, 부족한 실력을 채워주는 찍기가 더해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2천여만원이 훌쩍 넘는 거금을 획득한 그녀를 보면서 오버랩 되는 것이 결혼자금 마련하느라 알뜰살뜰 적금붓던 그녀 나이의 내 모습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겠다~ 저 아가씨는 하루만에 혼수자금 벌었구먼~. '
<Q&A> 이 책은 조금은 낯선 인도작가 비카스 스와루프의 데뷔작으로 퀴즈쇼에서 우승한 주인공이 어떻게 모든 문제를 맞출 수 있었는지 증명하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나는 구속되었다.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 p.9" 책은 이렇게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거액의 상금은 고사하고 구속이라니. 하지만 우승자가 정규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살짝 의심해봄직 하다. 퀴즈쇼를 주무르는 높으신 분들은 다른 의도로 주인공의 부정 행위를 캐내려 한다. 짐작대로 여기엔 상금과 관련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또한가지 주인공의 천한 신분도 이유가 된다. "두뇌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신체 기관이 아니다. 우리는 손발만을 사용해야 하는 천민이다. p.11" 가슴이 짠~ 해져 온다. 위대한 지도자 간디도 어쩌지 못했다는 인도의 계급의식, 21세기에도 여전히 인도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계층간의 갈등이 들여다 보이는 대목이다.
모진 고문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수호천사같은 여인이 변호사를 자처하며 나타나는데 이후 이야기는 두 사람의 면담 형식으로 진행된다. 제대된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던 주인공이 어떻게 12문제, 아니 13문제의 퀴즈를 연속해서 맞출 수 있었는지 증명해 나가는데, 그가 살아온 인생과 퀴즈쇼의 질문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너무나도 극적이다. 책의 스토리가 단순히 주인공의 살아온 인생을 독백처럼 혹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형식이었다면 이처럼 손에 땀을 쥐는 상황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으리라. 때론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 때론 가슴찡하고 속이 시원한 이야기들이 매 단락마다 약간의 반전을 가미한채 펼쳐진다. 거기다 '퀴즈쇼'라는 화려한 포장지가 이 모든 이야기들을 적절히 컨트롤하고 있다. 그나저나 10억루피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게야?
문학 속에는 그 시대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이 책을 펼치면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도 낯선 인도문화가 어떤 모습으로 작품속에 녹아 있을까 하는 것이다. 뒤늦게 밝히는 주인공의 이름은 '람 모하마드 토마스'이다. 이름만으로 왠지 예사롭지 않은, 주인공의 인생이 파란만장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인도의 다문화를 상징하는 의미가 함축된 것으로 살아남기 위해 지어진 본래의 의미대로 위험에 처할때마다 주인공을 지켜준다. 뿌리깊은 신분제도, 부패한 관료, 빈부격차, 어린이 노동 착취, 인도만의 독특한 영화산업(헐리웃 영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등 여러 분야에 있어서 인도사회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솔직히 어두운 면이 많이 비친 것이 사실이다. 소설이다보니 과장된 면도 있을 것이나 작가가 작품속에 담은 문제점들이 사회적 이슈가 될 수도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믿는다. 그래서 '펜의 힘'은 위대한 것이 아닐까.
'삶은 동시에 처절하고 아름답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주인공이 살아온 인생이 그러하다. 18세라고 하기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만큼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때로는 유혹도 있었을 것이고, 좌절한 적도 많았겠지만 모든 것을 이겨낸 댓가로 마침내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맞이한다. 구속된 직후 주인공은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기도 했다. 부자와 가난뱅이를 구분 짓는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선'을 뛰어 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행동으로 실천했을 뿐이다. 여기서 인생을 대하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바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 그것이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운명이나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각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다보면 언젠가는 '처절하게' 아름다운 인생이 '찬란하게'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