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동물원 1 - 불사조교파
조대연 지음 / 녹색문고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뻥!) 137억 년 전 어느 날, 창조주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였다. 무한한 창조 기법 중에서 창조주는 대폭팔을 골라잡았고 우주 만물의 운명은 그 순간 결정됐다. (중략) 은하의 현기증 나는 소용돌이, 항성의 현란한 탄생과 소멸, 행성의 은밀한 운행, 입자의 산만한 배회가 20만 년 전에 보잘것없는 피조물 하나를 낳았다. 또는 피조물의 육체에 한 영혼이 깃들였다. p.6-7"
 
와우~ 첫문장을 읽는 순간 현기증이 났다. ^^;; 계속 읽으려다가 책을 살짝 덮고 표지를 다시 보았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동물원의 원숭이에게 무슨일이 생긴건지. 아니면 UFO라도... 표지의 뒷부분을 보니 정말 비행물체가 날아가고 있었다. '상상동물원(불사조교파)'이라는 제목부터도 그렇고 이 책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내용은 아니라는 것쯤 이미 눈치 챘으리라 생각한다.  

우주의 탄생, 행성, 이론물리학, 천지창조... 처음 서너 페이지동안 읽는 사람 기를 팍팍 죽이더니만 마침내 우리의 주인공 미자가 등장했다. ^^ 미자의 할아버지 복영철은 유명한 씨름꾼으로 씨름판의 소를 쓸다시피 하였고, 소 떼를 팔아 풍년비료 공장을 차렸다. 복영철은 아들 복규일에게 '다수는 무조건 옳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강요하였고, 복규일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고생스러운 아들'로 살것인가 아니면 '상속자'로서 살아갈 것인가.' 복규일이 자신의 줏대있는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포기한 순간 그는 풍년그룹 회장이라는 탄탄대로에 올라서게 된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미자는 정자,희자,명자,경자,영자등의 멤버들로 구성된 '자세븐'을 결성하여 교내 안밖을 휘어 잡는다. 남자처럼 왈가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못말리는 문제아들은 아니다. 미자는 부유한 집안, 빠지지 않는 외모, 거기다 무술실력까지 갖춘 매력있는 캐릭터다. 적어도 춘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미자를 대적할 상대는 없었다. 빼어난 미모에 우수한 성적... 미자는 춘자의 등장으로 지금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좌절감'을 맛본다. 이들의 갈등은 미자가 풍년그룹의 후계자가 되고, 춘자가 유명 언론인이 된 후에도 계속된다.   

대략의 내용이라고 적어놓고 보니 참 이상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특정 줄거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뒤섞인 복잡한 구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자와 덕배 쌍둥이가 태어나던 해에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 '불사조교파'라는 알 수 없는 단체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한 또다른 단체의 치열한 다툼도 그렇고 외계인의 출현과 위선적인 정치인의 모습, 말하는 소와 언론, 태양을 공전하는 자동차들... 닿을 듯 말듯, 손에 잡힐듯 말듯 작가의 메세지는 과연 무엇일까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곳곳에 삽입된 반복적인 장면이다. 미자가 격분할 때 자신의 허벅지를 내려치는 동작, 차량으로 뛰어들고도 오히려 욕설을 해대는 남자, '이 분이 네 아버지시다'를 반복하며 매번 다른 남자를 아들에게 소개하는 중년 여인, 미자가 던진 짱돌에 맞아 기절하는 남자등 이번엔 누가 어떻게 등장할 것인지 예측불가다. 그리고, 미자와 춘자가 뒤엉켜 싸우는 동안 뒷쪽에서 왠 남자들이 싸우는 모습이 함께 연출되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컬트 뮤비나 블랙 코미디같은 분위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거든요. 사람은 무의미한 것을 견디지 못해요. 의미를 확인하고 확인해야 마음이 놓여요. p.257"

<상상동물원> 첫 문장을 읽을 때처럼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어질어질하다. 스토리만 적절히 추려서 가져도 그뿐이지만 문체나 구성, 의미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자면 정말... 만만한 내용은 아니다. 어쨌거나 후반부에는 미스테리에 싸여있던 '불사조교파'에 관한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납치되었던 미자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춘자를 만나면서 새로운 방향을 예고하고 있다. 한 권으로는 다 풀어내지 못한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 문득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의 한 장면, 우리에 갇힌 인간과 이를 구경하는 외계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창조주의 눈으로 본다고 가정했을 때, 인간의 모습이 동물원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아웅바둥 살아가는 생명체로 보이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 가끔한다. 저자는 우주가 무한하지 않을 뿐더러 언젠가 종말을 맞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무한하지 않은 '벽'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고, 종말은 누가 결정하는가. 분명한 것은 고대인들도 별자리를 보면서 '우주'와 '인간'에 대한 고민을 똑같이 했고, 인간이라는 종족이 남아있는 한 '질문'과 '가설'도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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