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운명은 아무도 탓할 수 없는 사고의 대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 p.32"
 
가난이 되물림 된다는 사실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지 오래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 되면서 중산층이 무너짐으로써 계층간 빈부격차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홀어머니가 행상을 하여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고 '사'자 들어가는 인물로 키워내는 것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한 가정의 경제력과 서울대 입학률이 비례한다고 할 정도로 없는 집 자식들은  교육의 기회조차 평등하게 누리지 못한다. 조기유학에 고액과외 이런 것이 개인의 선택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공교육이 바로 서지 못한 것과 더 나아가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등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 인도, 세계 최고의 IT강국 이면서 (엄연한 불법임에도)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는 나라, 한때 엄마들 사이에서 '19단'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도 인도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인도의 모습은 대부분의 빈곤층과 소수의 잘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계급이라는 것은 '직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조선시대를 떠올려 보면 양반, 상인, 중인, 천민의 구분이 생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구가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노동력'에 대한 댓가가 터무니 없다. TV 프로에서 잠깐 시청했던 기억이 나는데 하루 종일 빨래만 하는 노인이 있었다. 천한 계급이라는 이유로 대를 이어 그 일을 했고, 자식도 같은 일을 한단다. 정말 기인열전에나 나올만큼의 엄청난 양의 빨래를 해서 자전거에 싣고 배달까지. 하지만 댓가로 돌아오는 것은 겨우 입에 풀칠할 만큼 뿐이다. 주어진 환경을 운명처럼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스스로 운명의 고리를 깨뜨리려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상실의 상속' 이 책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히말라야 산중의 작은 도시 칼림퐁이다. 전직 판사인 제무바이는 젊은 시절 영국에서 유학한 앨리트로 마을의 자랑이다. 하지만 유학생활을 하면서 인종차별로 고통받은 그는 영국적인 것을 신봉하고 인도인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심지어는 유학가기전 사랑했던 아내와 딸 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애견 뮤트만을 유일한 가족으로 여긴다. 어느날 고아가 된 10대 소녀 사이가 외할아버지인 제무바이를 찾아오고, 사이로 인해 낡은 저택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계급간에 적당히 선을 긋는 게 중요해. 그렇지 않으면 그 중요한 경계선 양쪽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상처를 입게 돼. p.124"

 세월이 흐르면서 사이는 가정교사 지안과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둘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지안의 열등감도 커진다는 것. 결국 그는 네팔계 인도인들로 구성된 반정부 단체에 합류하여 사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단체가 처음 품었던 이상이 무엇이었는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들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은 대상이 불분명하여 사회적 불안감만 키울 뿐이었고, 칼림퐁은 점차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편, 제무바이 저택의 요리사의 아들 비주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위해 미국행에 오르지만 할렘가의 쪽방에 불법 체류자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먹고 살기 힘든시절 타국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민 1세대와 지금 국내 체류중인 외국인 근로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잠시 '상실감'을 겪어야만 했다.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환경을 뛰어 넘기 위해 그토록 발버둥쳤건만 주인공들에게 돌아온 것은 과연 무엇인가. 변화의 물결, 세계속의 인도인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점은 높이 살만하나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킬 길이 없다. "내가 바로 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상속재산이다." 키란 데사이의 주장처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환경과 문화는 상속의 결과이다. 부분적으로는 '상실의 상속'이기도 하고, 다른 면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작지만 희망을 보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속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것이 '희망'이었듯이 모든 '상속'에는 희망이라는 옵션이 항상 따라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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