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킬리만자로 꼭대기가 녹고 있대." 그녀가 남편에게 신문을 건네며 덧붙였따. 하늘에서 찍은 산 정상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하수도 같은 갈색 정상 여기저기서 흰색 빙하가 중년 이후의 삶의 시간처럼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p.234

  솔직히 너무 리얼하다. 그래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장르소설은 일단 접어 두고)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현실감으로 포장된 비현실성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소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때론 섹시한 커리어우먼이 되어 볼 수 있는 것이 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그런데 책의 주인공은 너무나 평범한듯 내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은 것 같다. 분명 내가 맞긴 한데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 낯선 '나'를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학창시절 모범생으로 장래가 촉망되던 줄리엣은 남편을 따라 이 곳으로 오게되고 어느날 문득 남편(가족)을 위해 희생된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어맨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종일 쓸고 닦고 미친듯이 집안일에 매달린다. 네 번째 아이를 임신한 솔리는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망가져 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알링턴파크적인 것을 유난히 강조하는 크리스틴은 모임을 주관하는등 동네를 휘젓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고, 메이지는 런던을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거라는 믿음이 깨어진 것에 대해 당황한다. 

런던의 외곽 조용하고 한적한 베드타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30대 여인들이 이야기... 그녀들은 각자 자라온 환경과 꿈, 직업이 다르지만 알링턴파크의 주민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함께 차를 마시거나 쇼핑을 하고,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등 일상을 함께 나누기도 하지만 그 나이의 여인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고민을 하면서 살아간다. 나라마다 문화와 환경이 다르지만 주부들의 일상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좋은 아내, 현명한 어머니란 어떤것인지... 그런 타이틀을 지키기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를 잘 알기에 그녀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링턴파크는 대도시 런던보다는 조용할지 몰라도, 인근의 다른 마을보다는 훨씬 부유한 동네다. 그런 동네에 사는 여인들이 보여주는 우울함은 자칫 '배부른' 모습으로 비춰질까 걱정스럽다. 지나다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나보다 이쁘지도 않고 공부도 못했던 그녀가 설사 나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있다고 한들, 집에와서 남편 바가지 긁어봤자 변하는 것은 없지 않은가. 20평형대 아파트에서 30평형대 아파트로 이사간다고 해서, 물질적 풍요로움이 '행복지수'까지 확실하게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왜 모를까. 

 책 소개를 보고 나와 같은 또래인 30대 여인들의 이야기라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 때론 나도 내 자신을 잘 모를때가 있다. 어떤 계기를 통해 객관적인 '나'를 보게 된다면 의외의 모습에 화들짝 놀랄 지도 모른다. 이 책이 그랬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들의 삶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고 이해가고 공감도 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알링턴 여자들처럼 살고싶진 않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제목에다 '완벽한'이란 수식을 붙힌 이유도 알것같고... ^^ 저자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된다. 나이들어 가면서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보다는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삶의 만족도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 자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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