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버트 그레이프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영화의 원작 소설이 주는 묘한 이끌림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특히나 좋아하는 배우가 한 명도 아니고 둘 씩이나 출현한 영화라면 더더욱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디 뎁,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바깥 날씨는 쌀쌀한데 마음 속 깊이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다. 아쉽게도 이 영화를 보지 못했기에 영화 검색부터 했다. 1994년 개봉작, 워낙에 오래된 영화인지라 배우들의 얼굴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위손'과 '캐리비언의 해적' 이미지인 조니 뎁도 그렇고, '타이타닉'의 레오는 어린이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런 그렇고 처음 책 제목과 표지를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빌리 엘리어트'의 텝댄스와 마지막 앤딩씬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면서 배경으로 떠올릴만한 이미지가 필요했는데 빌리가 살던 탄광촌과 길버트가 살던 엔도라의 풍경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1년 내도록 특별한 일 없이 조용한 마을, 길버트는 엔도라가 '음악 없이 춤을 추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지나가다 주유나 가게에 들리면 엘비스의 컨추리풍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의 할아버지때부터 함께 살아온 사람들로 가족적인 분위기이지만 때론 필요이상으로 관심을 가지는통에 부담스럽기도 한 그런 분위기가 연상된다. 어쨌거나 길버트는 오래전부터 이 곳을 떠나고 싶어한다.
길버트가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가족들 때문이다. 아빠가 자살한 후 몸이 뚱뚱해져서 걷는 것 조차 힘든 엄마, 엄마대신 가사를 돌보는 큰 누나 에이미,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사고뭉치 남동생 어니, 한창 멋내기 좋아하고 사춘기인 여동생 엘렌을 두고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계는 타지로 먼저 떠난 제니스 누나와 래리 형이 조금씩 보내주는 돈과 길버트가 식료품 가게에서 받는 급여로 겨우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 최근엔 식비조차 감당못해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서 외상이 쌓이고 있는 형편이니 가장의 책임을 떠안은 길버트의 어깨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전체적으로는 길버트가 1인칭 시점의 화자로서 자신의 이야기와 가족, 마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사실 읽다보면 좀 답답하다. 길버트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거의 병적으로 비대해진 엄마가 쇼파를 차지하고 앉아 쉴새 없이 먹을 것을 찾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 끊임 없이 그 엄마를 먹이는 에미미도 그렇고, 어니는 어쩔수 없다지만 사춘기임을 강조하며 철없이 행동하는 여동생도 얌체같다. 길버트와의 위험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카버 부인의 집요함도 맘에 안들고... 그러고보니 겉으로는 평화롭고 심심해 보이는 마을의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그레이프네 가족은 문제가 많은 집안이다. ;;
<길버트 그레이프>의 큰 줄거리는 어니의 18세 생일(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던)을 맞아 가족들이 모두 모이게 되고, 아버지의 죽음이후 가족들 각자가 품고 있던 앙금들이 해소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쩜 세월이 좀 흐르면 내 기억속에는 이 책이 '영화원작'이면서 '성장소설'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주인공의 나이가 20대로 좀 많긴 하지만 순수한 사랑에 눈 뜨게 되면서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고, 결과적으로 꿈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나서 기분이 좋다.
인생을 살다보면 머물러야 할 순간과 떠나야 할 순간을 판단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과거 우리의 누이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동생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선택해야 했던 것 처럼 길버트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삶은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 처럼 불평등해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기회는 반드시 오게 되고 또한 꿈은 이루어진다. 언젠가 때가 되면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거침없이 앞을 향해 돌진하시라~ 세상의 모든 길버트 그레이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