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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
시노다 세쓰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디오네 / 2008년 10월
평점 :
주인공 신이치는 서른 나이를 먹도록 연애한번 못해본 어리버리 쑥맥이다. 외모, 경력, 집안, 학벌... 어느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그는 SF 공상 소설의 번역일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간다. 생활이 빠듯하다보니 여러 잡지사를 전전하며 닥치는대로 라이터일을 맡기도 하는데 리카코를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선배를 대신해서 인터뷰를 나갔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말주변 없는 신이치는 본사 건물을 들어서면서부터 주눅이 들어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순간 말까지 더듬는다. 게다가 질문이란 것이 거의 심문 수준이니... 신이치 자신도 그런 스스로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동방은행 국제영업개발부 영업개발 프로젝트 매니저' 이것이 리카코의 직책이다. 화려한 학벌과 경력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그녀는 지금까지 신이치가 커리어우먼에 대해 가져왔던 편견을 한번에 날려버릴 만큼 성격도 상냥했다. 당황하는 신이치를 오히려 안심시키고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준 그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이치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두 사람의 짧은 연애, 초스피드 결혼까지 리카코와의 결혼은 신이치를 아는 많은 사람들(평소 신이치를 놀려대던 사무실 여직원들까지 포함해서)로 하여금 그를 재평가(?)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키 작고 뚱뚱한 별볼일 없는 남자와 성공한 연상의 직장녀 커플, 솔직히 이런 커플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어쨌거나 현실에서 흔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기에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설정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집밖에서는 '완벽' 그 자체인 아내가 집 안에만 들어오면 완전 어린아이보다 못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다는 것. 음식 만들기는 꽝이고, 청소나 세탁과 같은 의식주를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할 일들까지 내팽게치고 신이치에게 미룬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신이치가 대화를 시도할려고 하면 물건을 부수는등 히스테리를 부리기까지...;;
"편의점에서 접착제를 사들고 들어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데코 타일 바닥에 흘러넘친 물을 걸레로 닦아내고 변기 파편을 그러모아 지그소퍼즐처럼 조립하며 본체에 붙여나갔다. 대체 이 결혼은 뭘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체 자신은 어떤 여자와 결혼한 걸까. 자기는 분명 유능하고 미인이며 게다가 성격까지 좋은 최고의 여자에게 매료된 남자였다. 어떤 여자든 '일단 해버리면 내 손에 들어오는 법'이라고 굳게 믿었다. 어쩌면 자신은 오히려 '당해버린' 쪽이 아닐까. p.72-73"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은 장면도 있다.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신이치가 찌질해 보이고, 답답해 보이는 것은 물론 리카코같은 악녀도 없을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ㅎㅎ 아무생각 없이 큭큭 거리면서 읽다가 책 소개를 힐끗보니 정말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리카코의 모습이야말로 전형적인 우리 시대 남성상이며, 신이치는 여성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주부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며 집안일을 외면하던 남편들이 맞벌이로 돌아선 상황에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캐릭터들의 행동이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내용에 좀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치는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고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사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경우 리카코와의 결혼으로 인해 신분 상승된(?) 자신의 입지가 다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생활고에 힘들어하던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서글픔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때마침 아내의 임신 소식까지... ;; 이 부분에서도 결혼생활을 억지로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약자로서의 여성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혼녀라는 꼬리표와 경제적 어려움, 자녀문제등 이 커플이 특별한 한 쌍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부부들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오래 연애한 연인들이 막상 결혼을 한 후 서로에게 실망할 확율이 더 높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연애 기간동안은 서로에게만 최선을 다하면 되고 항상 포장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지만 결혼은 현실이다.('결혼은 현실이다'라는 이 말이 참으로 차갑게 들린다. 하지만 사실이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양가 부모, 배우자의 형제, 친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서로의 꾸미지 않은 모습에도 익숙해져야만 한다. 남자든 여자든 엄마가 챙겨주던 밥 먹고 직장다니면서 내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첨엔 답답하고 힘들다. 연애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배려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신이치, 리카코 커플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결국 이런 것들 아닐까. "이런저런 핑계대지 말고 입장 바꿔 생각해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