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가을이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도 좋고, 새빨간 단풍도 좋지만 이맘때면 해마다 사무실 단체 건강검진이 있다. 남편은 그 좋아하는 술을 일주일이나 참으며 콜레스테롤과 간수치 조절에 심혈을 기울였다. 나는? 나도 일주일이나 야식을 참으며 체중조절에 힘썼다. ^^;; 어쨌거나 당일 길고 지루한 대기시간을 견디기 위해 위로가 되어줄 책 한 권을 골랐는데 나름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하여 동행하게된 녀석이 바로 이 책이다. 
 
일단 크기가 자그마하고 240여 페이지 두께라서 책장만 잘 넘어간다면 몇시간 안에 다 읽을 수도 있겠다 싶어 맘에 들었다. 단, 한가지 문제가 있으니 책 표지다. 핑크빛 도는 바탕에 웬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발레동작을 연출하고 있는 장면인데 그다지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솔직히 촌스럽다는 뜻임. ~ㅋ) 더구나 <오, 나의 마나님> 이라고 적힌 선명한 문구때문에 다소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아 결국은 달력 한 장 찢어서 표지를 입혔다. 너무 소심한가? 어쨌거나 준비완료~!!
 
  번역된 책들중 드물게 '한국어판 머리말'이 있어 반가웠다. 동양의 나라에서 왜 하필 자신의 책을 선택했을까 하는 고민으로 시작해서 인터넷에 한국에 관해 검색하는 장면, 그리고 '바람난 가족'이라는 영화이야기까지...  책의 내용이 작가 자신의 일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읽으니 더 재미있다. 다만, 분명히 해둘것은 책의 내용이 보편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예술가의 나라이자 자유의(자유 연애의) 나라인 프랑스이지만 여성의 인권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진행형이라는 점, 다시말해 여성의 급여 문제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는 여성의 수가 아직은 남성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핫~ 재미있다. 그리고 잘 읽힌다. ^^ '태초에 유아용 콧물흡입기가 있었다'라는 첫번째 단락의 제목만 보아도 대략  느낌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매 단락마다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재미있고 유쾌하다. 잘 나가는 아내덕분에(?) 가사의 대부분을 떠맡고, 두 명의 딸들까지 보살펴야 하는 주인공의 일상, 푸념, 환상(엉뚱하거나 못된 상상) 기타 등등에 관한 내용들이 코믹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1인칭 서술 시점이어서 더욱 실감나고 현실에서도 왠지... 있을법한 커플이라는 생각에 공감하면서 읽게 된다.

"내가 마지막으로 복수를 했던 적은? 작년에 전화통신업체를 다른 업체로 바꿨던 일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쓰러뜨렸던 자는? 75년 2월 소꿉장난할 때였다. 내 아내가 진짜로 요리한 마지막 요리는? 신혼초에 한 삶은 달걀이다. 그리고 아내를 보호해주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은 지도 정말 오래되었다. 오직 내 딸들만이 아직도 내 보호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난 더이상 아빠가 아니다.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136-137"

이 남자의 푸념... 낯설지 않다.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주로 하는 이야기가 나는 어디로 가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며느리만 남았구나 하는 '정체성의 상실'에 관한 것들인데 사실 산다는 것은 다 그런거지 싶다. 하지만 남편 흉을 열심히 보다가도 헤어질 때쯤 되면 묘한 기류가 흐르면서 결국은 신랑들 자랑질하다가 끝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다비드 아비께르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다시말해 내용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아내에 대한 자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사일에 대한 불만과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 같아 우울하고, 아내의 승진 뒤에 상사와의 어떤 뒷거래가 있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하지만 알고보니 이 모든 것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잘 나가는 남자들 사이에서 명암도 못 내밀고 찌그러져 있을 때, 어여쁜 아내가 다가와 목을 휘감으며 "여보~" 라고 불러주자 모든 상황을 반전으로 엎으며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는 그 부분이야말로 '마나님 자랑'의 결정적 장면이며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닐까? ^^ 

 작가의 성격상 한국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궁금할 터... 이 말이 꼭 전해졌으면 좋겠다. "(프랑스어로 번역해 주세요) 책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중요한 것은 '유머러스함'에 달렸다는, 여자들한테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황이 오더라도 결코 '유머' 만큼은 빼앗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 책이 잘 팔려서 '팬사인회'하러 오시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에 꼭 한번 오세요. '바람난 가족'이란 영화만으로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엔 너무 부족하답니다. 하핫~ ^^ 그리고 더이상 찌질한 척 하지마세요~ 한국 사회에서도 아저씨만큼 가정에 헌신하는 남자는 드물답니다. 참 멋진 분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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