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목을 움츠리게 만들었던 새벽의 찬 기운은 옷소매 사이로 빠져나갔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산기슭으로 밀려와 머물렀던 안개는 햇살의 발길질에 놀라 산 아래로 밀려나 흩어지고 있습니다. p.6"

소주 한잔을 비운 사람처럼 "캬~~"하는 감탄사를 터뜨리게 만듭니다. 조용한 시골의 아침 풍경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듯 묘사가 뛰어납니다. 뭐랄까 조지훈님의 '승무'에서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고 했던 표현처럼 번역되지 않은 우리 글에서만 느낄수 있는 은유적 표현법이 가슴을 울립니다. 함께 실려있는 삽화도 어쩜 이렇게 이쁠수가...  글도 그림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동화입니다. ^^ 
 
20년 동안 자란 키큰 백양나무의 곁가지인 '나'는 뜻하지 않게 나무로부터 잘려나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막대기'가 되었습니다. 사연인즉 마을을 지나치는 열차의 기적소리에 놀란 박씨네 암소를 진정시키위해 회초리로 꺽인 것이지요. 다른 나무들은 잘려나간 부분의 생명이 곧바로 빠져나가버리지만 백양나무의 곁가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분이 모두 날아가버리기 전에 적당히 뿌리내릴 곳만 찾는다면 어엿한 나무로 자랄 수 있게 됩니다. 
 
막대기는 지금까지 어미나무의 보살핌 속에서 고마운 줄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당연히 그런줄로만 알고 철없이 살아왔습니다. 갈증에 허덕이며 삶과 죽음의 경제를 몇번씩 넘나들며 새삼 어미나무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박씨네 집으로 오게 된 막대기는 울보 딸 재희를 어느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재희의 손에 들려지는 기쁨도 잠시 재희를 매질해야 하는 얄궂은 운영을 겪습니다. 그리고 뒷간의 똥통을 휘젓는 똥친막대기도 되었다가 재희를 지켜주는 방패도 되었다가... 막대기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나는 비극을 맞이할 준비만 갖추고 있는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운명의 길에 나를 내맡긴 채 어떤 기억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기적만이 나를 회생시킬 수 있다는 믿음도 가치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p.48-49"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조차 기적을 바라는 것이 결코 헛된 꿈은 아닐 것입니다. 희망을 버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슬플때 눈물을 흘리지요. 반대로 기쁠때도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책을 읽는동안 자꾸만 눈물이 맺혔습니다. 내 안에 기쁨이 넘쳤다는 표현은 좀 이상한 것 같고, 슬펐던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 삶의 빛을 서서히 잃어가는 똥칙막대기가 희망을 끈을 놓지않고 회생의 믿음을 지켜가는 모습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성인책보다 한 권의 '동화'가 저를 미소짓게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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