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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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콜리어의 걸작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라는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백마를 탄 여인, 처음엔 작품성을 위해서 그냥 누드를 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머리를 푹 숙인 것을 보고는 어떤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가혹한 세금에 허덕이는 농민들을 위해 백작의 부당한 요구를 실행하는 장면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워 보였던지.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 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늙은 노인의 욕정일거라는 오해로 시작했지만 '아사형'을 받는 아버지를 위해 앞가슴을 풀어 헤친 여인의 사연을 알게 된 순간 등줄기가 찌리릿해 오는 감동을 느꼈다. 두 그림은 예술 작품을 대할 때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과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를 일깨워준 작품이기도 하다.   

<무서운 그림> 표지를 장식한 여인의 눈동자가 과장되게 돌아가 있다. 심각한 모의를 하고 있는 것처럼 술을 따르려는 시녀도 마찬가지다. 곧이어 무언가 일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 이처럼 책에 실려 있는 그림은 앞서 언급한 두 작품들과는 반대의 경우가 많다. 신화 속의 한 장면이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 성처녀에 대한 수태고지, 국왕이나 교황의 초상화, 심지어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그린 작품을 통해서 그림에 얽힌 비화나 섬뜩하면서도 충격적인 사실을 끄집어 내고 있으며, 보여지는 장면 자체가 처참한 그림들 또한 내용을 읽고 보면 더욱 강열하게 와닿는다.     

 드가는 '무용수의 화가'라고 불릴만큼 발레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그렸다. 그의 작품중 '에투알' 혹은 '무대 위의 무용수'로 알려진 작품은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어디선가 한번쯤은 보았을 만큼 낯익은 그림이다. 중앙에는 청초하면서도 앳된 모습의 여자 무용수가 한 다리로 균형을 잡으면서 연기에 몰입해 있고 뒷쪽에는 무대 장치 사이로 대기중인 다른 무용수들의 하반신이 살짝 보인다. 무대위에서는 한없이 아름다운 그녀들이지만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 상류계급의 남성들을 위한 성매매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일하는 여성은 경멸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 실제로 최하층민으로 구성된 무용수들은 자신을 후원해줄 재력가가 절실했다고 한다. 무용수의 목에 장식된 검은색 리본과 남자의 검은색 양복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보티첼리의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라는 작품은 총 네 개의 패널로 되어있는데  백마 탄 남자에게 쫓기면서 개에게 물린 여인, 쓰러진 여인의 배를 가르는 남자, 연회장에서 다시 개에게 물린 여인, 마지막으로 결혼식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의 내용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가져온 것으로 남자의 사랑을 거부한 여인이 그 남자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상황을 매주 반복해서 겪어야만 하는 형벌과 그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한 나스타조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당대의 부호였던 푸치 가문을 위해 그려진 이 작품은 '결혼 선물'이었다고 하는데 정략결혼이 성행했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설사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부모가 맺어준 배우자를 운명처럼 믿고 살라는 무언의 압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무서운 건 천재지변도, 유령도 아닌, 바로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마음에 새겼기에... (후략) p.231"  소개된 그림에는 실제로 악령에 대한 것처럼 책을 덮은 후에도 며칠씩 따라다닐 만큼의 공포는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섬뜩함은 대부분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들이다. 다시말해 인간을 구속하는 사회적 환경이나 관습일수도 있고 화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온 것도 있다. 따라서 공포소설과 같은 자극을 원하기 보다 그림을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으로 읽는다면 작가가 말하는 '섬뜩함'의 실체를 보다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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