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여걸열전 - 우리 민족사를 울린 불멸의 여인들
황원갑 지음 / 바움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는 history 애초부터 여성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이 부분은 여성에 대해 관대했던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대한 기록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며 (물론 '삼국유사'나 '사국사기'등이 후대에 집필된 이유가 클 것이다.) 동서양을 통틀어서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세상의 반이 남자라면, 나머지 반은 여자인것을... 어찌 남자들만으로 역사가 만들어진단 말인가. 동시대를 살았던 남자들보다 단지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칭찬과 격려가 아닌 질시를 받아야 했는 여인들... 역사의 뒤안길에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지만 훌륭한 여인들이 더 많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군주를 낳은 여인도, 재상을 낳은 여인도, 거상이나 위대한 학자를 기른 이도 결국은 우리의 어머니들, 여인들이기 때문이다. 
 
 처음 몇페이지를 읽으면서 주인공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보다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남성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사실에 약간 당황했었다. 예를들면 첫번째 여걸로 꼽았던 '웅녀'의 경우는 단군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든지, 유화부인의 경우는 해모수나 주몽의 이야기가 더 많고, 뒤를이은 소서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뭔가 이야기를 꺼내려다 자꾸만 삼천포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어쩔수 없는 것 같다. 역사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하다보니 결국 남성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더구나 여걸들이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이나 집권층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는데 그들 또한 대부분 남성이기에 말이다.

먼저 웅녀의 경우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신화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조상님이라는 사실. 웅녀는 웅족, 호랑이는 호족을 나타내며 웅녀는 천손족과의 결혼을 통해 단군을 낳는다. 세월이 흘러 역사속 인물들을 신격화한 모습은 후세 사람들에게 실존인물이 아닐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단군상을 미신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큰 오류를 범하고 있음이다.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자명고와 자명각이 실제로는 스스로 소리를 내는 북과 나팔이 아니라 주술사였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역사에 서술된 내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하나하나 의미를 맞춰가면서 풀이해주니 보다 현실감있게 전달된다.   

 도미의 아내는 권력자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정절을 지킴으로써 만인의 칭송을 받으며 남편의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 여성의 정절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라고는 하나 '도미의 아내'로서 밖에 기록되지 못했던 사실을 대할 때 당시 여성들이 처해던 위치가 씁쓸할 뿐이다. <춘향전>의 실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한주의 이야기 속에는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로 인해 유명한 '단심가(丹心歌)'가 나온다. 한주가 개백현 성주의 수청을 거부하면서 읊었다고 한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원작자를 확실히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한주의 이야기도 도미의 아내처럼 여성의 정절을 강조한 내용이다. 남자들은 드러내놓고 첩실을 거느리며 기방을 출입하면서도 여성들에게는 억압된 삶을 강요하였던 불합리가 당연시 되던 시절이 아닌가. 신사임당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어했고 황진이나 어을우동은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모순된 사회를 농락하였다.  

그외에도 남편이 죽자 시동생을 왕으로 삼고 결혼하여 황후의 자리를 보장받은 우황우, 공녀로 보내졌지만 원나라의 황후가된 기황후, 여성에게 적대적이었던 유교 사회에서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학문을 논했던 임윤지당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가장 생소한 인물이 있었으니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장군이라고 할 수 있는 연개소문의 누이 연수영에 관한 이야기다. 2003년도 중국측이 관련 유적지를 유네스코에 등록하면서 우리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현재까지도 우리 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중국측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어 적극적인 연구가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알려진 것처럼 고구려, 발해등 우리 역사의 중요한 유적지들이 북한과 중국에 속해있는 것을 고려할 때, 역사 연구에 대한 장기적이고도 치밀한 계획이 요구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한국사 여걸열전>에는 우리 역사 속에서 크나큰 족적을 남긴 27명의 여걸들을 서술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책으로 이덕일님의 <여인열전>이 잘 알려져 있다.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세세한 비교는 힘들지만 대부분의 여인들이 중복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고, 시대순이 아니라 테마별로 엮은 점에서는 이 책과 차이를 보인다. 기회가 되면 나란히 두고 비교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등장하는 여걸들 중에는 뛰어난 문장가도 있고, 예술가, 냉철한 정치가, 혹은 관능미를 앞세운 여인들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여성들보다 몇백배는 더 힘들었을 상황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했던 그녀들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