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서
한호택 지음 / 달과소 / 2008년 8월
평점 :
삼국이 서로 밀고 당기며 어수선한 시기, 고구려의 침략에 분노한 백제의 성왕은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에 복수를 하려하지만 신라의 배신으로 또다시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성왕과 아들 창의 분노는 신라를 향하고 다시금 일으킨 신라와의 전쟁에서 성왕은 목숨을 잃고 만다. 창은 위덕왕이 된 후에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되고 이를 빌미로 귀족들의 힘이 강해진다. 그들중 해씨 부족은 아좌태자의 어머니인 목왕비를 유폐시키고 해진이라는 후궁을 정실 왕비로 삼지만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려는 위덕왕은 왕비 해진을 멀리한다.
한편, 서동의 어머니 수련은 어린시절 도적들에게 부모님을 잃고 미륵사의 주지인 지광에 의해 키워진다. 수련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말만 믿고 만취한 한 사내와 동침하는데 잠에서 깬 남자는 불같이 노하여 수련에게 칼을 겨누었다가 사라져 버린다. 이는 해진 왕비의 숙부인 달솔이 꾸민 일로 위덕왕이 스스로 맹세를 깨뜨리도록 함이었다. 그후 달솔은 수련의 목숨을 노리고, 지광의 도움으로 살아난 수련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위덕왕의 아들 '장'을 낳아 기른다.
"장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사람들이 물으면 어머니는 습지에 살고 있는 용이 아버지라고 했다. (중략) 장은 아버지가 그립지 않았다. 아버지가 누구든 자신은 용의 자식이었다. 언젠가 이 작은 습지를 벗어나 드넓은 천지를 마음껏 날아다니리라... p.13"
출생의 비밀은 시청율 높은 드라마의 요건만은 아니다. 역사속 영웅에게도 드라마틱한 출생의 비밀은 필수다. 고구려의 주몽도, 그의 아들 유리왕도 훗날 무왕이 된 장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있다. 그들은 한 많은 어머니들에 의해 '아비가 누구이든 무조건 훌륭한 인물이 될 사람'이라는 식의 혹독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본인들 또한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질풍노도의 시기에 혼란을 겪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며 훌륭한 스승님들을 만나 정치, 경제, 문화등 다방면에 걸쳐 영웅 수업을 받는 것도 당연한 순서이다.
현실에서도 영원한 우방과 적국이 없듯이 고대사회에서는 더욱 치열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진이가 말하기를 백제와 고구려는 형제국인데 원수처럼 싸우고, 백제와 신라는 사돈간인데도 평화롭지 못하다. 해씨는 귀족으로 그만한 영화를 누림에도 왕권을 노리며, 위덕왕은 왕좌를 떠나고 싶지만 못 떠나고, 아좌는 왕이 싫지만 태자가 되어야만 했다. 라고 했는데 '세상은 모순 투성이다. ' 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선문답같은 주장이 장의 결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느새 그는 '왕'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무왕의 탄생에서부터 왕위를 잇기까지'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토록 기나긴 여정중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단연코 장과 선화공주의 스토리일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왜로 건너가게 된 장은 때마침 그곳에 머물던 선화공주와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신라 진평왕의 딸로 알려진 선화공주는 신라 내부의 권력다툼, 정략결혼, 언니 덕만공주와의 갈등으로 도망치듯 그곳에 와 있었던 것이다. 장과 선화공주는 신라왕족 왕춘으로 인해 잠시 위기를 겪지만 유명한 '서동요'를 통해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잊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은 싸우고 있다. 오랜 세월 싸우는 동안 싸움 자체가 목적이 됐다. 싸움에 이기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망상이다. 꽃을 꺾어 꽃을 얻을 수 없고 새를 잡아 새소리를 누릴 수 없다.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먼저 그가 원하는 것을 떠올리게 해라. 그가 꽃을 원하면 꽃밭으로 데려가고 새소리를 원하면 새를 잡지 않고도 새와 더불어 살 수 있음을 깨닫게 해라. 내 생각대로만 하려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말을 따라서만도 안 된다. 해결책은 늘 네 생각과 상대의 생각을 가로지르는 사선에 있다. p.150 "
<연서> 단아한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이다. 역사 소설을 워낙에 좋아하다 보니 이 책도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드라마 <서동요>를 시청했더라면 시나리오와 비교하는 재미를 더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넘치면서 빠른 전개가 돋보이는데 굉장히 빨리 읽혔던 책이다. 최근에 출간된 역사소설은 지금까지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역사의 한 부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백제 무왕이라하면 '서동요'와 관련된 드라마틱한 사랑에 대해서만 주목했었는데, 외침과 내전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위해 노력했던 정치력에 주목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