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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 노시보는 개성넘치면서도 지극히 평범한 범주에 속하는 이 땅의 25세 남자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늘 칭찬받던 형으로 인해 나름 착실한 학창시절을 보냈음에도 철저하게 차별대우 받은 기억을 간직해야 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1년동안 여덟 번째 회사에 입사(일곱 번째 까지는 회사가 망하거나 월급을 주지 않거나 ;;) 했을만큼 어려운 경제상황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무미건조한 도시 생활에서 외로움과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파업, 대공황, 전쟁, 식품 파동과같은 뉴스 뿐이라고 생각하는 노시보, 그는 진정한 뉴스홀릭이다.
달이 두 개체로 분리되었다~!! 밤이 되면 그 모습을 드러냈다가 아침이면 사라지는, 항상 똑같은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었던 달은 제2의 개체를 만들어냄으로써 모든 메스컴을 점령하는 최대의 이슈가 되었다. 뉴스들은 바쁘다. 동물들의 이상 행동과 함께 과학계의 여러 주장들을 상세히 소개하는등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달'에만 집중되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지구 곳곳에 숨어있던 '무중력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들은 중력을 거부하고, 궁극적으로 신대륙인 달로 이주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다. 사무실에서도 무중력자임을 선언한 직원이 생겨나고, 노시보의 어머니도 달구경 간다고 가출할만큼 무중력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무중력자 사이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다. 그들은 두 파로 나뉘었다. 지구의 중력을 거부하는 데 무게를 두는 급진파와 지구가 온전히 무중력의 휘하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온건파. 급진파는 줄없는 번지 점프를 계속했다. p.143 "
"달이 늘어난 후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무언가를 그만두거나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아 졌다. p.154"
새로운 달의 출현은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켰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미용기술 하나 없이 '무중력 미용실'을 개업했고,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셔터맨'이 되었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형은 요리사를 꿈꾸고, 소설가가 되겠다던 노시보의 친구 구보씨는 돈을 벌기 위해 '무중력 판타지아'라는 회사에 취직한다. 점차 '무중력'에 중독된 사람들은 어느 순간 '무중력' 아니면 안 되는 상황에 까지 이르고 말았다. 노시보를 괴롭혔던 잡다스런 병증들 목덜미가 뻐근하고, 위가 쓰리고, 시야가 흐려지는 증상들은 그토록 많은 병원을 전전하였어도 원인을 알 수 없다가 마침내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얻기에 이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더 이상 달의 증식은 뉴스가 되지 않았다. 닭이 매일 알을 낳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듯, 달이 매달 또 다른 달을 낳는 것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다. 달의 번식은 여전히 두렵고 알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그 두려움 역시 습관처럼 굳어버렸다. p.233"
"이 사회의 거짓말이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달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범죄를 계획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들킬 때까지 계속할 거짓말을. p.290"
현대인들은 누구나 쇼킹한 뉴스에 끌리고, 또한 쉽게 식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소외감'이라고 지적한 저자는 달이 하나씩 증식하는 과정을 통해 혼란스러워하는 사회를 풍자적으로 묘사하였다. 자신들의 변화된 삶이나 심지어 범죄조차도 달의 탓으로 돌리던 사람들은 달이 여섯개까지 늘어나자 이내 시큰둥해져 버린다. '달의 증식'은 더이상 뉴스 거리가 되지 못하고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급기야 두 번째, 세 번째... 달은 애초에 없었으며 '우주 쓰레기'라는 주장이 나오자 모두가 허탈해 한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 그나저나 지금껏 사기친 저 달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무중력 증후군> 일단은 13회를 맞은 한겨례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점이 끌렸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출판업계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한국문학에 대한 염려가 커질수록 신인들의 발굴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처음엔 일본소설 인줄 알았다. 표지도 제목도 심지어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재를 능청스럽게 풀어나가는 내용에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어떤풍'이란 개념을 떠나 신인작가만의 참신하면서도 발랄한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어서 기분 좋은 독서였다.
덧붙임
올 봄에 120센티 키를 넘긴 7살 아들은 요즘 놀이공원에 푹 빠져있다. 주말마다 바이킹에 롤러코스터에 잔디썰매에 저렇게 뇌를 흔들어도 되나 걱정스러울 만큼 놀이기구를 탄다. 생각해보니 놀이공원만큼 물리학적으로 설계된 공간이 있을까 싶을정도로 각각의 기구들은 중력과 무중력, 작용과 반작용, 원심력과 구심력을 이용해서 만들어 졌다. 오, 놀라워라~ 덜컹 덜컹 덜컹.... 중력을 거부한 힘이 작은 기차를 하늘 위로 끌어 올린다. '팅~ ' 하는 순간 요란한 굉음에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묻힌다. 기존의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늘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자, 중력을 거부한 벌을 받아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