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의 약속
코데마리 루이 지음, 고정아 옮김 / 행간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급체한 느낌이었다. 막힘없이 술술 읽고도 어떻게 소화시켜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기분이랄까. 하여간 서평의 가닥을 잡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책에는 모두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고 연령과 직업이 다양하다. 그녀들은 각자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하는데 대상이 유부남이거나 어린 학생, 여성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충격적이다. 평범하지만은 않은 사랑이기에, 오히려 비난받는 사랑이기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소설이란 세상의 모습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거울로서 비록 추악한 얼굴이나 더러운 거리를 비추더라도 그건 거울의 죄가 아니다. 스탕달" 멀티 독서중이던 다른 책에서 발견한 이 문구가 내겐 한 알의 '소화제'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그제서야 자판을 두드릴 힘을 얻는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욕망 - 주인공 '나'는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지만 마흔 나이를 앞두고 심리적 위축감을 겪고 있는 캐릭터다. 3년전 남편과 사별한 사실 또한 그녀의 인생을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어느날 윗선을 통해 접촉해온 세일즈맨을 만나 강매를 정중히 거절해야만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호텔 카페에서 그 남자를 처음 본 순간 남자로부터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둘은 의뢰로 대화가 통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단계 이상으로 발전했을 때 즈음 "우리 또 언제 만나죠?" 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잘 부탁드립니다"로 끝맺는 문자를 보내온다. 
 
주인공에게 사랑이었던 것이 그 남자에게는 '인맥'을 늘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구나 가정까지 있는 남자면서... 진짜 나쁜 남자다. 그런데 두번 생각해보니 좀 그렇다. 주인공은 남자의 영업실적을 좌우할 수 있는 사람, 즉 업무상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고 남자는 주인공의 비위를 맞춰주어야만 하는 입장이다.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흐르다보니 남자의 입장에서보면 오히려 주인공의 '욕망'에 휘둘린, 먹고 살기 힘든 슬픈 가장일 뿐이다. 첫눈에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리는 사랑, 운명적인 사랑을 한번쯤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으려나. 주인공 '나'의 비참함과 배신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지는 않다.  

빛과 그림자의 약속 - 주인공 '나'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30대 여성이다. "이런 여자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온 그런 여자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되어 있었다. p.121" 불륜을 소재로한 드라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전형적인 커플이라고나 할까. 어린 시절 편모 슬하에서 엄하게 자란 나는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리 탓인지 너무 쉽게 너무나 격정적으로 남자에게 빠져버렸다. 남자는 '나'의 앞에서 대놓고 부인와 아이들을 걱정하는가 하면 '나'도 가족이다. 혹은 그래봐야 '나'는 절대로 떠나지 못할걸 등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남자의 뻔뻔함에도 불구하고 차마 떠나지 못했던 나는 마침내 새로운 사랑에 눈 뜨게 된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녀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었기에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는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도,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정리하지 못하는 것도 동전의 양면처럼 사랑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인공이 깨달은 것처럼 사랑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다운 사랑이 있는 반면 욕정과 소유욕, 애증, 연민이나 동정등은 억지로 사랑이라 같다 붙이더라도 실체가 아닌 '그림자'에 불과한 사랑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왜? 이쁘고 아름다운 사랑대신 우울한 사랑이야기를 풀어 놓았을까. 그것도 여섯편 씩이나. 서문도 없고, 역자의 꼬리말도 없어 책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달리 생각하면 독자 맘대로... 느껴지는대로... 그것으로 족하다는 뜻일게다. 책의 원제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로 평범하지 않은듯 보이는 사랑이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암시한다는데 좀 난감하다. 다만 구성과 편집에 있어서 단편들이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특이하고, 단편과 단편이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듯해서 흥미롭다. 분명한 것은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든 간에 '거울'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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