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몰리, 그녀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마흔 여섯의 나이에도 옆으로 재주넘기를 거뜬히 해내던' 이라는 표현으로는 그녀의 삶을 대략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많은듯하다. 원조교제부터 시작해서 확실하게 알려진 남자로는 작곡가 클라이브, 일간지 편집국장 버넌을 거쳐 출판재벌 조지와 결혼하지만 외무장관 가머니의 정부이기도 하다. 몰리의 남자관계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이었고 삼각관계나 사각관계를 넘어선 다각구조다.  

여주인공의 복잡한 남자관계 때문에 좀 당황스러웠는데 첫장면에서부터 몰리가 죽은채로 등장한다는 사실이 더욱 독특하게 와닿았다.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이 불편한 분위기를 무릅쓰고 장례식장에 모여 가식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책을 읽는 이의 마음까지도 씁쓸하게 만든다. 아내의 남자들을 경계하던 조지는 외무장관 가머니의 지극히 사적인 사진을 버넌에게 제보하고 일간지의 판매량으로 고민하던 버넌은 신문에 사진을 싣기로 결심한다. 이 사실을 알게된 클라이브는 가머니로 인해 몰리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우려해 버넌을 만류하는데 오히려 버넌은 악상을 잊어버릴까봐 위기에 처한 여인을 모른척 해버린 클라이브의 도덕성에 맹공격을 퍼붓는다. 이로써 몰리에 대한 추억을 공유한 오랜 친구인 클라이브와 버넌은 등을 돌리게 되고, 각자 사회적으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게 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몰리로 시작해서 몰리의 남자들, 그리고 클라이브와 버넌 두 사람의 대결로 좁혀진다. 둘은 마침내 암스테르담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매듭지어진다. 책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 등장인물 모두가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 자리에 있게 된 사람들이라는 점. 한마디로 무능해보이고 철저한 이중인격자에다 자신을 합리화시키는데 급급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몰리라는 여인의 남성편력에 대해서는 그녀가 얼마나 특별한가 하는 식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오랫동안 죽이 맞아 조지와 가머니를 씹어대던 두 남자가 어느날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서로에게 비수를 겨누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 물론 클라이브와 버넌은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비양심적인 사람들이다. 서로가 욕했던 것처럼 누가 더 무게감 있을까 따질 필요도 없이 수평을 이룬 시소같다. 하지만 극단적인 결말로 이어질만큼은 아닌데 싶은 생각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오래전부터 짤막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서너 시간 안에 읽힐 수 있는, 독자가 구조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진도가 힘들었던 책이다. 아담한 사이즈에 분량도 많지 않아 쉽게 보았는데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몰입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다만 '인간'과 '도덕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건데 인간은 누구나 위기 상황이 되면 자신의 뒤를 돌아보기 보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인가 보다. 또한 도덕적 기준에 있어서도 타인에게보다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지기가 쉽다. 단순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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